[야구타임스 | 유진 객원기자] 세계야구의 질서가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그러한 징조가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며, 그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이는 지난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세계 축구의 질서가 유럽-남미 일변도에서 아시아로 확산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의견에 많은 이의를 제기하는 축구 전문가들도 있지만, 적어도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아시아를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이나마 달라진 것만은 사실이다.

야구 또한 예외가 아니다.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을 기점으로 떠오른 신흥 국가들을 살펴보면 더욱 그러하다.


▶ 대회 최대 이변을 일으킨 네덜란드,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번 대회의 가장 큰 이변은 ‘우승후보’ 도미니카 공화국을 연파하며 복병으로 떠오른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예선 라운드 1차전에서 도미니카를 3-2로 꺾으며 파란을 일으킨데 이어, 도미니카와 다시 맞붙은 최종진출전에서도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2-1로 굿바이 역전승, 8강이 겨루는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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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미니카를 꺾은 네덜란드 ⓒworldbaseballclassic.com

불과 작년 올림픽 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에 10-0, 8회 콜드게임 패를 당했던 네덜란드였다. 그런 네덜란드가 데이빗 오티즈(보스턴)와 헨리 라미레즈(플로리다), 페드로 마르티네즈(전 뉴욕 메츠) 등의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이 즐비한 도미니카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꺾은 것은 단순한 놀라움의 차원을 넘어선다.

자국리그 선수들이 주축이 되었던 올림픽과 달리 이번 WBC에 출장한 네덜란드 대표팀은 왕년의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베테랑 선수들과 마이너리거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특히 베테랑 선수들은 마치 우리나라의 박찬호-이승엽의 존재와도 같이 뛰어난 실력과 더불어 정신적 지주 역할까지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메이저리그 통산 90승(106패)을 기록 중인 선발 시드니 폰슨(전 뉴욕 양키스)과 팀의 톱타자 역할을 톡톡히 해 낸 진 킹세일(전 디트로이트)과 중심타선의 랜달 사이먼(전 필라델피아) 등이 있다.

폰슨은 도미니카와의 첫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4이닝 동안 2실점으로 비교적 호투하면서 승리투수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킹세일은 4경기에서 5안타를 기록하며 팀 내 유일한 3할 타율(.313)을 기록 중이다.

랜달 사이먼은 메이저리그를 관심 있게 지켜본 한국 야구팬들이라면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최희섭이 시카고 컵스 유니폼을 입고 있었던 2003시즌 막판, 트레이드를 통해 팀에 합류한 후 부진에 빠진 최희섭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던 선수가 바로 사이먼이었기 때문이다.

2002년에는 3할 타율(.301)과 더불어 19홈런 82타점, 2003년에도 16홈런 72타점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던 사이먼은 그 이후로는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자리 잡지 못하고 피츠버그, 템파베이, 필라델피아 등을 떠돌더니 2006년을 끝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종적을 감췄었다.

그러한 사이먼이 아주 오랜만에 네덜란드 국가대표 3번 타자로 나타나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카리브 해의 네덜란드령 큐라소(Curacao) 출생으로 메이저리그에서 500경기 이상을 뛴 사이먼은 그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있다.

190cm의 큰 키에서 나오는 빠른 볼이 일품인 톰 스투이프베르겐(Tom Stuifbergen) 역시 네덜란드 2라운드 진출의 일등 공신이다. 미네소타 트윈스 산하 마이너리그 소속인 그는 도미니카와의 최종진출전에 선발 등판해 4이닝 동안 5피안타 무실점 3탈삼진을 기록했다. 헨리 라미레즈, 데이비드 오티즈, 미겔 테하다 등이 마이너리거에 불과한 이 애송이에게 속절없이 당하고 만 것이다. 2라운드에서 만나게 될 베네수엘라나 미국 등도 네덜란드를 얕보다가는 큰 코 다칠 수도 있다.


▶ ‘플라잉 더치맨’의 전설

일본 프로야구에 대만 출신의 왕정치와 한국계의 장훈, 김정일(가네다 마사이치) 등이 큰 족적을 남긴 것처럼 메이저리그에도 미국계가 아닌 선수들이 전설적인 반열에 올라 있는 경우가 제법 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역대 최고의 유격수’라는 평가를 받는 호너스 와그너(Honus Wagner)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최초의 5인(타이 콥, 월터 존슨, 크리스 매튜슨, 베이브 루스)’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한 와그너는 ‘날아다니는 네덜란드인(The Flying Dutchman)’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전설적인 선수다. 자존심 강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타이 콥이 와그너를 두고 “저 빌어먹을 놈의 네덜란드인은 내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선수야”라고 한탄한 적이 있을 정도.

8번의 타격왕과 더불어 통산 .327의 높은 타율로 101홈런 1732타점 1736득점 722도루를 기록한 와그너는 루스와 똑같은 95%의 득표율을 얻으며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네덜란드 대표팀의 투수코치로 활약하고 있는 버트 블라일레븐(통산 287승 3701탈삼진 3.31)도 메이저리그에서 한 획을 그었던 선수이며, 이번에는 빠졌지만 제1회 대회 때는 참가했던 홈런왕 출신의 앤드류 존스(통산 371홈런 1131타점)도 사이먼과 같은 큐라소 출신이다.

이처럼 19세기부터 네덜란드와 야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으며, 지금 네덜란드 국가 대표팀에도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가 11명에 이른다(은퇴/FA 선수 제외). 도미니카를 꺾었던 것이 ‘이변’임은 틀림없으나, 적어도 단순한 ‘우연’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 마이크 피아자가 자진 참가한 이탈리아

이탈리아 또한 이번 대회에서 네덜란드 못지않은 ‘유럽 돌풍’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1차전에서는 베네수엘라에게 7-0으로 패하고 말았지만, 패자전에서는 저스틴 모노(미네소타)와 제이슨 베이(보스턴), 러셀 마틴(LA 다저스) 등이 버틴 캐나다를 6-2로 꺾으며 일찌감치 짐을 싸게 만드는 이변을 일으켰다.

제1회 WBC에 이탈리아 대표 유니폼을 입었던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공격형 포수 마이크 피아자(통산 427홈런 1335타점)가 타격 코치로 다시 한 번 자진 참가의 의사를 밝히자, 적지 않은 메이저리거들이 이탈리아 유니폼을 입고 조국을 위해 뛰기로 결심했다.

현직 메이저리거 숫자만 놓고 보면 오히려 네덜란드보다 더 많다. 프랭크 카탈라노토(텍사스)를 필두로 닉 푼토(미네소타), 마크 디펠리스(밀워키) 등 총 6명의 선수가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어 있다.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까지 포함할 경우 총 15명의 선수가 미국에 진출해 있는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28명의 선수 중 3명을 제외한 25명이 미국 무대에 진출해 있으며, 10명이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어 있는 캐나다를 꺾은 것은 다소 의외였다. 하지만 이 승리는 이탈리아의 단결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은퇴 이후 모국인 이탈리아에 야구를 깊이 뿌리내리고자 하는 피아자 코치의 노력이 이번 대회에서 더욱 빛난 셈이다.


▶ 야구의 세계화는 유럽에 달려있다.

그러나 이들 두 유럽 국가들의 활약이 아직까지는 WBC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선수 구성에 있어 미국이나 중남미의 독립리그에 진출한 선수들에 의지하는 바가 크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또한 축구가 대세인 유럽에 야구가 좀처럼 자리를 못 잡고 있는 것도 이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축구가 가장 세계적인 스포츠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야구 또한 확실하게 뿌리를 내린 대부분의 곳에서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하고 있다. 그런 만큼 이번 WBC에서 나타난 유럽 국가들의 선전이 유럽 내의 야구 저변 확대로 이어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올림픽 위원회(IOC)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야구를 정식종목에서 제외시킨 데에 따른 ‘외양간 고치기’ 작업의 일환으로도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야구를 세계가 주목하고 또한 즐기는 스포츠로 확산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야구의 세계화’는 유럽의 동조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유럽 내에서 야구를 즐기는 곳이 늘어나고, 강한 자국 리그를 보유한 나라가 등장해야 전 세계 야구시장이 넓어지고, 또한 재미있어진다. 그리고 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는 WBC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라 부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야구의 세계화는 유럽에 달려있다.

// 유진 객원기자
야구타임스 편집 김홍석 기자(블로그 :
MLBspec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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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Daum 스포츠 해외야구 섹션 전문 칼럼니스트
전 데일리안 스포츠 메이저리그 전문 객원기자
현재 야구타임스 편집기자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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