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ㅣ 손윤 기자] 13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는 수많은 사건 사고와 더불어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MLB 타임머신’에서는 과거의 그 날짜에 일어났던 중요한 일들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져 보기로 한다.
▶ 1945년 4월 17일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초인’인 피트 그레이가 데뷔를 한 날이다. 피트 그레이라는 이름이 금시초문인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피트 그레이는 메이저리그에서 77게임에 출전해서 타율 0.218, 13타점 등 평범하기는커녕 볼품없는 성적만을 남겼다. "뭐 이런 선수가 최고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피트 그레이는 어릴 때 사고로 오른 팔을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즉, 한쪽 팔로 야구를 했고, 게다가 메이저리그에까지 진출한 것이다.
한 팔뿐인 그는 사회인 야구를 거쳐서, 1942년에 캐나디언 아메리칸 리그의 스리 리버스라는 마이너리그 팀에 입단하면서 야구가 직업이 되었다. 0.381라는 고타율을 기록한 그는 1943년에는 한 단계 위인 멤피스 칙스로 승격되었고, 거기에서도 풀 시즌을 뛰면서 타율 0.289를 기록했다.
1944년에는 한 술 더 떠서 타율 0.333, 66도루 등으로 리그 MVP를 차지하면서, 메이저리그로 진출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1945년에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한쪽 팔이 없다는 핸디캡 속에서도 그가 메이저리그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피나는 노력도 있었지만, 세계 대전으로 인해 젊은 선수들이 전쟁터로 가면서 그라운드에서 뛸 선수가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타격이야 한 손으로 할 수 있지만, 수비는 어떻게 했을 지라는 의구심을 가질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는 볼을 잡으면 그 볼을 공중에 살짝 띄운 후에 글러브를 벗고 그 띄운 볼을 잡아서 송구했다. 이 동작이 매우 민첩해서 다른 선수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1945년에 좌익수로 77경기에 출전한 그는 234타수 중에서 단 11삼진을 당할 만큼 맞추는 능력이 탁월했고, 번트도 능숙해서 단순한 눈요기가 아닌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였다. 전쟁이 끝나고 주력 선수들이 속속 팀에 복귀하면서 그의 화려한 외출은 단 1년으로 끝났다.
1949년까지 마이너리그 등에서 현역 생활을 계속한 그에게 많은 사람들은 용기를 얻었고, 또한 인간의 끝없는 도전 정신에 갈채를 보냈다.
// 손윤 기자(블로그 : yagoo.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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