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 위클리 이닝(inning.co.kr)] 야구는 투수놀음이다. 야구 시즌을 돌아보면 이 말이 언제나 진리인 경우가 많았다. 야구는 실제로 투수력에 의해서 승패가 갈린다. 최강의 창과 최강의 방패가 만날 때, 방패가 이기는 경우가 더 많았다.

국제 대회에서 일본을 상대로 승리할 때의 영웅들의 계보는 왼손 투수들의 몫이었고, 한국 시리즈 4승의 최동원, 불펜에서 몸만 풀었어도 상대가 지레 무너졌다는 선동렬, 47승을 합작한 선발투수 3명(정민철, 송진우, 이상목)과 전설의 마무리 구대성으로 우승을 차지한 99년의 한화는 에이스의 힘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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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힘과 힘이 맞부딪히는 단기전만이 아니라, 정규 시즌에서도 투수력은 중요하다. 30승을 차지하며 만년 꼴찌였던 삼미를 상위권으로 도약시킨 장명부의 사례는 극단적이라 쳐도, 좋은 투수진이 있으면 팀이 하위권으로 추락하지는 않는 사례는 29년 프로야구 역사에서 여럿 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1994년의 태평양은 빈약한 공격력에도 강력한 투수진을 앞세워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타고투저의 시대에서 집단으로 투수진이 흔들리던 시기에도 결국 정상은 투수진들이 강한 팀들의 몫이었다.

올 시즌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다. 정규시즌이 반환점을 돈 지금 팀의 성패를 가른 것은 투수력이다. 팀 타격이 가장 좋은 LG가 4강안에 치고 들어가지 못한 것과 규정타석을 채운 3할 타자가 한 명도 없는 KIA가 3위를 지키고 있는 까닭은 모두 투수력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주지하는 것처럼 LG는 투수력이 흔들리면서 여러 차례 고비에서 무너졌고, 반면에 KIA의 경우 로페즈와 구톰슨의 활약, 양현종의 각성이 투수력에 강점을 보태며 선두권을 지키고 있다.

이처럼 순위 경쟁의 중요한 변수인 투수력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선발진과 불펜이다. 그 중에서 적어도 올 시즌에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것은 선발진이다. 지난 시즌까지 강한 불펜을 토대로 한 야구가 순위 경쟁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면, 올 시즌에는 선발진이 얼마나 강한가에 따라 팀의 성패가 결정되고 있다.

경기수의 증가는 각 팀의 감독들로 하여금 불펜의 집중 투입을 신중하게 만든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불펜 중심의 야구로 인해 불펜진의 피로가 누적되었다. 더욱이 올 해는 지난 몇 년 동안 볼 수 없던 타고투저의 시즌으로 선발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말하면 선발이 무너지지 않은 팀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다.

▷ SK 와이번스

선두로 도약한 SK는 시즌 초 분명 작년처럼 강한 모습은 아니었다. 지난 해 역사에 손꼽을 정도로 압도적인 시즌을 보낼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김광현-채병룡-레이번-송은범으로 이어지는 선발진의 공헌도 컸지만,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던 불펜진의 충실한 활약이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마무리 정대현, 왼손 셋업 정우람, 가득염, 이승호, 오른손 셋업 윤길현, 롱릴리프 조영민, 김원형, 사이드암 이영욱, 가장 경험이 풍부한 불펜 조웅천까지. 다양한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쓸 수 있었던 점이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즉, 굳이 선발을 길게 가져가지 않아도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고, 이는 시즌 끝까지 외국인 선수 한 명이 공백이었던 SK에게는 큰 자산이었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지난 시즌 불펜을 지켰던 대다수가 전력에서 이탈했다. 조영민, 이영욱의 입대와 조웅천, 김원형의 노쇠 조짐, 정우람의 피로 누적과 정대현, 이승호의 WBC 후유증과 윤길현의 수술까지. 이로 인해 작년의 불펜이 가졌던 질적, 양적인 힘은 떨어졌고, SK는 시즌 초반에 채병룡을 불펜으로 돌리는 비상수단까지 사용해야만 했다. 그러나 채병룡의 불펜 전환은 성공적이지 않았으며, 급기야 9회 한 이닝이 8점을 내주며 다 잡은 경기를 따라잡히는 충격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팀이 무너지지 않고 1위를 다툴 수 있던 원동력은 선발진의 강세 덕분이었다. 김광현-송은범-고효준-전병두-카도쿠라로 이어지는 선발진이 굳건히 이닝을 소화하면서 잡을 경기를 잡아낸 결과 꾸준히 상위권을 지킬 수 있었다. 비록 존슨과 니코스키가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공백은 국내 선발 투수들의 맹활약으로 메울 수 있었다. 불펜에서 이승호가 무리한 것은 옥의 티지만, 최근 들어 글로버의 영입, 전병두의 불펜 가세, 윤길현, 정우람의 귀환은 어느 정도 티를 없애는데 성공했다. 선발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불펜의 약점을 상대적으로 최소화시킬 수 있었으며, 그 사이 불펜을 정비할 시간을 벌었다.

▷ KIA와 롯데

비슷한 사례가 KIA와 롯데다. KIA의 경우 시즌 초부터 선발 투수들이 넘쳐났다는 표현을 들었다. 이범석이 부상으로 이탈하고, 서재응은 자주 로테이션을 이탈했고, 마무리 한기주가 부진하여 윤석민을 마무리로 쓰는 비상 상황도 나왔지만, 두 외국인 선수의 활약과 양현종의 각성, 언제든지 대기 중인 곽정철의 존재는 안정적인 선발진을 토대로 시즌을 운영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직 마무리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유동훈과 손영민이 이끄는 불펜이면 승리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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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가 시즌 초반에 부진했던 원인은 선발진의 붕괴였다. 송승준과 장원준이 시즌 초반에 최악의 투구를 보이면서 무너졌을 때, 팀의 성적도 최하위권으로 처졌고, 그에 따라 로이스터 감독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그러나 송승준과 장원준이 살아나고, 손민한이 복귀하면서 롯데의 선발진은 8개 구단 가운데 수준급으로 회복됐다. 선발의 안정이 맞물리면서 롯데는 6월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면서 최하위에서 4위까지 단숨에 도약할 수 있었다.

▷ 히어로즈와 삼성

히어로즈의 경우 롯데와 유사한 경로를 보이며 5위까지 올랐지만, 선발진의 문제는 한계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타선은 시즌 초부터 꾸준히 위력을 뽐냈으며, 불펜은 이보근의 등장과 오재영, 신철인, 송신영이 자기 몫을 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이현승 외에 딱히 안정적인 선발이 없는 점은 여전히 히어로즈의 아킬레스건이다. 김수경과 장원삼이 회복세를 보이는 것이 최근 상승세를 탈 수 있었던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타선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선발진이 조금만 버티면, 마일영과 황두성이 작년의 위력으로 돌아온다면,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은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삼성도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다. 중반 이후 4위에서 미끄러진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지적할 수 있겠지만, 선발진의 이탈도 한 원인이었다. 조진호는 함량 미달이었고, 배영수는 수술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했다. 윤성환이 부진에 빠지고, 에르난데스가 부상으로 오랫동안 이탈하면서 팀의 전력이 갑자기 약해졌다.

권혁, 정현욱, 오승환의 불펜진이 강력하다고 하지만, WBC 후유증과 몇 년간의 무리로 인해 예년처럼 필승까지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불펜에 휴식을 주는 선발진이 아쉬운 삼성이다. 최근 들어 타선의 호조와 더불어 선발진에 차우찬과 이우선이 가세하고, 윤성환의 복귀하면서 삼성은 그럭저럭 전력을 추슬렀다. 불펜 위주의 야구를 보여주는 삼성이 과연 선발진에게 좀 더 믿음을 주는 야구를 할지는 조금 더 지켜보기는 해야 한다.

▷ LG와 한화

반대의 경우가 LG와 한화다. LG의 경우 강력한 타선을 보유했지만, 8연승 이후에 주춤한 원인에는 투수진이 무너진 점이 컸다. 그 중에서도 불펜이 가장 컸다. 초반에 잘 해주던 최동환이 무너졌고, 정찬헌은 너무 많이 던졌으며, 우규민은 다시 자신감을 잃었다. 류택현과 (돌아온) 이재영이 그나마 자기 몫을 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에 더해서 선발진이 흔들린 것이 불펜의 과부화를 불러왔다. 초반에 선발로 그럭저럭 활약하던 최원호, 이범준이 부상으로 이탈하고, 시즌 전부터 불안하던 옥스프링과 박명환은 끝내 별다른 도움이 못됐다. 결국 봉중근과 심수창만 선발에 남게 된 것이다. 바우어는 아직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고, 김광수는 준수하지만 선발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줄 정도까지는 아니다.

한화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류현진을 제외한 선발이 전무하다고 봐도 좋다. 류현진을 뺀 나머지 투수들은 심하게 말하면 ‘그 날 제일 먼저 나온 투수’, 혹은 ‘마정길, 양훈, 황재규보다 먼저 나온 투수’라고 할 수 있다. 김혁민은 다승만 괜찮을 뿐, 그 외의 지표는 참담하며, 그나마 어느 정도 자기 몫을 해주던 안영명도 최근에는 흔들리고 있다. 유원상은 여전히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전어의 계절이 오기만을 바라고 있다.

더욱이 한화는 류현진 세대와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 문동환 세대를 이어줄 연결 고리가 너무 적다. KIA가 윤석민 세대를 보호하기 위해 구톰슨과 로페즈를 둬서 서재응이 혹시나 무너질 경우를 대비한 것과 비교하면, 한화가 더 위기에 취약한 투수진을 가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두산 베어스

두산은 독특한 편이다. 선발진이 붕괴된 상황에서도 2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시즌 초부터 붕괴된 것은 아니었다. 시즌 초에는 아쉬우나마 김선우-김상현-정재훈의 로테이션이 돌아갔고, 홍상삼의 가세는 뜻밖의 행운이었다. 여기에 두산 불펜의 양과 질이 워낙 풍부했기 때문에 선발진이 조금만 버티면, 바로 불펜을 집중 투입해서 승리를 가져갈 수 있었다. 핵심 불펜이 세 명이었고, 금민철, 오현택 같은 선수들이 지는 경기에서 이닝을 소화하면서 선발진의 약세를 그럭저럭 버텼다.

하지만 최근의 선발진의 붕괴는 두산의 성적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김선우는 5이닝 이상을 던지지 못하고, 김상현과 정재훈은 이미 로테이션을 이탈했다. 여기에 화수분으로 불리던 두산의 육성 체계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사실상 외국인 투수 니코스키와 세데뇨에게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경문 감독 체제에서 두산의 좋은 성과를 올렸지만, 유일하게 성과를 내지 못한 부분이 선발 투수의 성장이다. 정상을 다퉜던 SK와 바로 이 부분에서 격차가 났다. 레이번보다 우세했던 리오스, 랜들이 있었지만, 김광현과 맞설 수 있는 좋은 선발을 키우는데 실패한 것이 결과적으로 지금의 위기까지 이어졌다.(물론 선발은 키우고 싶다고 키울 수 없는 것이기는 하다.) 김경문 감독 체제가 5년간 큰 업적을 남겼지만, 국내파 선발 에이스를 육성하지 못한 것은 두산에게는 하나의 아쉬움이다.

▷ 결국, 문제는 선발투수다

투수진이 시즌 끝까지 잘 나가라는 법은 없다. 선발진의 경우, 불의의 부상과 같은 돌발 상황이 나오면 얼마든지 성패가 변할 수 있다. 그리고 선발이 잘 해도 타선이 받쳐주지 못하거나, 불펜이 불을 지르면 별반 소용이 없다. 또, 잘 던지던 선발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선발이 약해서 승기를 잃어버린 채 경기하는 것만큼 불리한 경기도 없다. 결국 야구는 누가 먼저 기세를 잡고, 그 기세를 이어가는가의 싸움인데, 기세 싸움의 최선봉에는 항상 각 팀의 선발투수들이 있다. 그렇기에 야구는 투수 놀음, 그 중에서도 선발이 강한 팀을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올 해의 순위 싸움, 최근의 기세는 선발투수들의 성패에 달려있다. 섣부르지만, 결국 2009년의 문제는 선발투수고, 해결책도 선발투수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 위클리 이닝(inning.co.kr)
<사진 : 위-봉중근 (C) LG 트윈스, 아래-구톰슨, 로페즈 (C) KIA 타이거즈>

야구타임스 김홍석 편집기자(블로그 : MLBspec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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