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 이준목] 사실 그는 소위 말하는 ‘천재’ 과는 아니었다. 남들보다 몇 배는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도 빛을 발하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할 만큼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평범한’ 재능의 선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만큼 몇 배의 치열한 노력이 필요했다. 누구보다 집요했던 타석에서의 끈기도, 좌우를 가리지 않는 ‘스위치히터’로서의 모습도, 알고 보면 선택받은 재능을 지닌 천재들이 즐비한 프로의 세계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노력의 결과였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격언이 현실에도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선수. 바로 베어스 팬들에게 ‘소리 없는 강자’ 또는 ‘뚝심의 장샘’으로 기억되는 장원진(40)이다.

■ 평범한 재능· 박복한 운수를 넘어 ‘역대 최고의 2번 타자’로

장원진은 지난 20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잠실 홈경기에서 뒤늦은 은퇴식을 갖고 팬들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가졌다. 이미 지난 시즌을 끝으로 사실상 유니폼을 벗고 일본에서의 코치해외연수와 운영팀 활동 등을 통해 새로운 야구인생을 준비해왔으니 많이 늦어진 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2년 신인 2차 지명 5순위로 두산의 전신 OB에 입단한 그는 2008년까지 17시즌 동안 오직 한 팀에서만 활약했던 베어스 군단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통산 성적은 1500경기에 출전해 타율 0.284(4733타수 1342안타) 51홈런 505타점을 기록했다.

장원진은 화려한 스타플레이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서른 줄에 접어들 때까지도 대타와 수비 전문 백업 요원을 전전하며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장원진은 학창시절부터 맞추는 능력은 어느 정도 인정받았지만, 그 외의 모든 자질에서는 ‘평균 이하’라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촉망받는 선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운이 썩 좋았던 것도 아니다. 전형적인 인천 토박이였던 장원진은 프로에 입문할 당시 정민태, 권명철 같은 걸출한 선수들이 대거 등장하는 바람에 연고지명을 받지 못했고, 그나마 뒤늦게 서울팀 OB에 재고처리 되듯 구명을 받아 간신히 프로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

또한 그가 입단했던 시기의 OB는 김형석과 김종석, 김상호, 김광림 등 쟁쟁한 선수들을 앞세워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던 시기였고, 이후로도 김동주, 심정수, 정수근 같은 쟁쟁한 신예들이 대거 등장하는 바람에 주전은커녕 출장 기회를 확보하는 것도 힘에 부칠 정도였다. 2년여 간의 방위 복무와 만년 후보 생활이 이어지며 20대를 넘기는 동안, 그렇게 장원진은 평범한 선수로서 조용히 묻히는 듯했다.

하지만 사람의 일생에 적어도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했을 때, 장원진은 적어도 그 중 한 번의 기회는 놓치지 않았고, 그것이 그의 야구인생을 바꾸어놓았다. 99년 선두를 달리던 두산은 외국인 선수 캐세레스의 부상 공백으로 내야진과 타순의 재편이 불가피했고 벤치멤버로 절치부심하던 장원진이 모처럼 기회를 얻으며 주전으로 도약하는데 성공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시 두산은 이종범의 계보를 이어 리그를 대표하는 ‘대도’이자 톱타자로 성장한 정수근을 비롯하여, 우·동·수(우즈·김동주·심정수)로 이어지는 KBO 역대 최강의 클린업트리오가 막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던 시점이었다. 장원진은 이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주는 2번 타자 역할을 맡아 정수근과 황금 테이블세터진을 구축하며 중심타선에 ‘밥상’을 차려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흔히 2번 타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지만 전술적으로는 타선의 짜임새를 높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자리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상대 투수를 괴롭힐 수 있는 끈질긴 선구안과 컨택팅 능력은 물론이고, 번트나 치고 달리기 등 다양한 상황에 맞춰 팀배팅과 작전소화능력까지 두루 갖춰야한다. 그런 면에서 장원진은 2번 타자로서 가장 완벽한 조건을 겸비한 선수였다.

탁월한 안타생산 능력과 팀배팅 능력을 겸비한 장원진의 존재는 두산 타선의 짜임새를 높여주는 숨은 살림꾼이었다. 장원진은 리그 정상급 투수를 상대로도 유인구에 쉽게 속지 않는 뛰어난 선구안과 어지간한 공을 모두 커트해낼 수 있는 배트스피드를 가졌고, 좌우를 가리지 않는 타격으로 어디든 원하는 방향으로 타구를 보낼 수 있는 능력을 두루 갖췄다고 평가받으며 리그 최고의 2번 타자로 성장했다.

98년부터 4년 연속 도루왕을 석권했던 정수근의 기동력에 날개를 달아준 것도 장원진이었다. 톱타자였던 정수근이 출루하여 끊임없는 주루플레이로 상대 투수들의 신경을 긁었다면, 장원진은 상대 투수들의 투구수를 잡아먹으며 힘을 빼는 역할을 담당했다. 장원진은 정수근과 미리 약속을 맞춰서 투 스트라이크까지 카운트를 잡아놓고, 정수근이 도루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것은 정수근의 빠른 발을 의식한 투수가 장원진을 상대로 느린 변화구를 쉽게 던지지 못하는 부담을 가지게 되면서, 상호 공생의 효과를 발휘했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정수근과 장원진의 황금 테이블세터진이 전성기를 구가했던 3년 동안 두산은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놓치지 않았고, 한국시리즈 우승 1회, 준우승 1회의 눈부신 업적을 남겼다. 이들이 없었다면 한 시대를 풍미한 우·동·수 트리오의 파괴력도 그토록 압도적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장원진은 생애 첫 풀타임 시즌이던 99년 팀 내 최다인 135개의 안타를 때려내며 3할 타율을 기록했고, 기세를 몰아 2000년에는 무려 170개의 안타(타율 .323)를 때려내며 최다안타 타이틀을 따내기도 했다. 2번 타자의 특성상, 매년 희생번트 등 팀배팅으로 인한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꾸준히 2할8푼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다는 것은 장원진의 타격능력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부분이다. 정수근이 FA로 롯데에 이적한 2004년 이후에는 톱타자 역할까지 분담하며 주전과 백업을 오가는 전천후 활약으로 오랫동안 두산의 빛과 소금을 담당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월은 속일 수 없는 법이어서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 장원진도 2007년부터 서서히 하향세로 접어들었다. 젊은 선수들을 육성하려는 김경문 감독의 정책과 맞물려 대타 요원으로 밀려났고, 2008시즌 23경기 출장에 그친 장원진은 고심 끝에 은퇴를 결정하고 지도자로서 제 2의 야구인생을 시작했다.

그와 함께 한 시대를 짧고 굵게 풍미했던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도 떠나는 순간에는 쓸쓸하게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 반면,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던 장원진이 결국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아 팬들의 축복 속에 은퇴식까지 치르고 떠날 수 있었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비록 한 시대의 찬란한 스포트라이트는 허락되지 않았을지 몰라도, 오랜 시간이 걸쳐 한발 한발 개척해온 길들은 세월이 흘러 누구보다도 빛나는 위대한 업적으로 남았다. 오직 노력 하나로 전설이 된 위대한 조연 장원진의 야구인생은, 대기만성을 꿈꾸는 모든 평범한 선수들에 던져지는 희망의 메시지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야구타임스 김홍석 편집인(블로그 : MLBspecial.net)
- Copyrights ⓒ 야구타임스(yagootime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Writer profile
author image
야구를 사랑하고 즐기는
모든 팬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야구타임스!
야구타임스는 블로거들이 만들어가는 '블로그 미디어'입니다.

TRACKBACK :: http://yagootimes.com/trackback/540

textcube textcube get rss

야구타임스

TNM'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atter & Media

Tattertools Tatter & Media DesignMyself!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677-6 영남빌딩 8층 등록번호 : 서울아00739 등록일자 : 2009년 1월 14일 발행인 : 명승은 / 편집인 : 김홍석
Copyright 2009 (C)YagooTimes.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TNM. Designed by Qwer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