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블로거 칼럼] 포스트시즌을 향한 롯데 자이언츠의 기세가 놀랍다. 경쟁 팀보다 많은 경기를 치렀다는 불리함을 딛고, 오히려 널뛰기 일정을 이용해 가을 잔치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간 상태다.

충분한 휴식은 타선의 응집력을 좋아지게 만들었고,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경기에 따라 타순을 바꾸면서 변화를 도모했다. 유동적인 라인업은 일부 선수들에게 긴장감도 불어넣었다. 공격력이 뒷받침 된다면 투수들은 한결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 그렇다고 타선만 좋아져서는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연승을 이루어내기 힘들다. 투타의 완벽한 조화는 롯데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같은 기간 동안 선발 투수들이 제 역할을 해준 덕분이다. 다승왕 경쟁을 펼치고 있는 조정훈(14승)을 비롯해 장원준과 송승준까지 13승 대열에 합류해있다. 삼성과의 마지막 맞대결을 승리로 연결한 두 투수가 장원준과 조정훈이다. 시즌 내내 기복으로 인해 안정감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으나, 정작 승리가 절실한 순간에 원투펀치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송승준도 지난 두산 전에서 오랜만의 등판을 승리로 연결시켰다. 이들 모두가 순수 국내파로 구성되었다는 점은 롯데만의 메리트다.

그런데, 이번 시즌 롯데의 삼각편대를 보면 아쉬움이 먼저 묻어난다. 당연히 있어야 될 선수가 한 명 빠졌기 때문이다. '888577'이란 웃지 못 할 암호까지 나왔던 시기에 오직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서 고군분투했던 선수가 있었다. 2005년에는 다승과 평균자책점 부문 1위를 차지하며 포스트시즌 탈락 팀에서 처음으로 MVP를 배출하는 기적도 만들어냈다. 만년 하위권에 머물렀던 롯데에겐 과분한 선수였고, 달리 말해 롯데가 자랑할 수 있는 유일한 투수였다. 언제나 묵묵히 팀의 우승을 목표로 했고, 국가의 부름에도 거절하지 않았다. 에이스란 말이 너무나 잘 어울렸던 투수가 바로 손민한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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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에게 손민한은 연패 스토퍼이자 명실상부한 승리 메이커였다. 타자들도 손민한이 등판하면 그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경기 집중력을 더욱 높였다. 이렇듯 에이스는 투수 본인만 잘 던져서 되는 것이 아니라 동료 선수들이 모두 인정해야만 만들어질 수 있는 존재다. 지난 해, 그는 꿈에 그리던 포스트시즌 무대를 8년 만에 다시 밟았다. 여느 드라마였다면 팀은 손민한의 활약으로 8년 만에 진출한 그 자리에서 우승까지 거뒀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와 달리 냉정했다. 2차전 선발로 나섰던 그는 승리를 거두는 것은 고사하고 퀄리티스타트도 하지 못했다. 손민한의 조기강판, 이보다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은 없었다. 어렵게 진출했던 팀은 무기력하게 한 차례 반격도 해보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손민한의 가을도 떨어지는 낙엽처럼 쓸쓸하게 막을 내렸다.

올해 초, 야구팬들에게 정규시즌에 앞서 또 다른 축제가 펼쳐졌다. 흔히 WBC로 통용되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2번째 개막을 알렸다. 올림픽과 달리 메이저리거들이 출전하는 유일한 대회로써, 세계의 모든 야구 대회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여겨진다. 이미 베이징 올림픽에서 세대교체의 성공을 보여줬던 우리나라는 WBC도 1회 때와 다른 이름들이 대표팀 명단을 채웠다. 그중에서도 손민한은 3년 전에 이름을 올렸던 7명 중 한 명이였다. 뿐만 아니라, 선수단의 주장까지 맡게 된 그는 대회에 임한 책임감이 다른 선수들보다 투철했다. 많은 사람들은 제1회 때 미국과의 일전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공 3개로 삼진 처리한 장면을 회상했다. 또 다시 그의 명품 체인지업은 콧대 높은 메이저리거들의 자존심을 꺾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손민한은 국민들을 열광에 빠뜨린 이번 WBC 대표팀의 중심축에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주장 완장이 부끄럽지 않은 활약은 보여줬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번 역시 현실은 달랐다. 그는 본선 무대를 단 한 번도 밟지 못했고, 이에 '손민한 실종 사건'이란 말까지 나돌았다. 전국구 에이스의 치욕적인 순간이었다. 몸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아 WBC 대회에 등판하지 못했다고 하나, 뒤이어 개막한 프로야구 정규시즌에서도 손민한의 모습은 한동안 볼 수 없었다. 정신적인 지주가 사라진 팀의 성적은 바닥을 쳤고, 강팀으로 분류되었던 롯데는 다시 한 번 좌절을 맛보는 듯 했다. 하지만 이러한 와중에도 로이스터 감독은 '6월 반격론'을 내세우며 긍정의 힘에 무게를 더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6월에 접어든 지 일주일째 되는 날, 약 8개월 만에 손민한은 돌아왔다. 복귀전 상대는 당시 선두를 달리고 있었던 두산 베어스. 강팀을 만나게 된 점과 어깨 통증 재발에 대한 우려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다행히 복귀전은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명불허전의 모습을 보여준 손민한은 6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면서 팀 승리에 일조했다. 이후, 7월까지 6승2패 평균자책 3.05의 성적을 남기며 5년 연속 두 자리 승수 달성에도 성공할 것으로 보였다. 6월26일에는 한화를 상대로 개인 통산 100승의 업적을 이루어냈다. 프로야구 사상 20번째, 구단 역사에서는 윤학길에 이은 두 번째였다.

돌아온 손민한에게 피칭의 생명은 타이밍이였다. 평균구속이 눈에 띄게 줄어든 손민한은 다양한 변화구와 능숙한 수 싸움으로 타자를 제압해야 했다. 원래 구위에 크게 의존하는 유형이 아니었기에 완급조절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평균 이상의 성적은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손민한을 상대했던 김태균은 “140대 중반의 패스트볼을 던졌던 손민한이 이제는 100킬로 남짓의 패스트볼을 던진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당혹스러운 쪽은 타자다”라는 말까지 남겼다.

러나 마지막까지 현실은 그에게 냉담했다. 등판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는 장면은 그의 어깨가 아직 정상궤도에 올라오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통증을 참고 꾸준히 등판했지만 심각할 정도로 떨어진 구위, 제구력을 잃어버린 손민한에게 계속해서 당할 만큼 한국 타자들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8월 들어 3연패를 당하는 동안 평균 5이닝을 버티지 못했고, 27일 삼성전을 끝으로 올 시즌 손민한의 등판일지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8월 성적은 5경기에 나서 3패, 그리고 평균자책점은 10.89였다. 도저히 그가 기록했다고는 납득하기 어려운 성적이었다.

결국, 정밀 진단을 받은 손민한은 어깨에 염증이 있고, 물이 차 있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수술을 위해 남들보다 일찍 시즌을 정리했다. 2000년대 들어 손민한이 100이닝을 던지지 못하고 시즌을 마감한 적은 없었다. 5점대 평균자책점을 남긴 것도 1999년이 마지막이었다. 상황을 고려한다면 올해가 생애 최악의 시즌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FA계약 후 첫 해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팬들의 믿음에 보답하지 못한 죄책감이 함께 동반되었을 것이다. 지금 롯데 팬들은 2년 연속 가을야구를 하기 위해 조정훈과 장원준의 이름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함께 바라야 될 소원은 내년 시즌 손민한의 부활이다. 일부 팬들은 손민한을 퇴물로 취급하며 그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는데 이는 분명 잘못된 행동이다. 새로운 얼굴이 등장한다고 해서 어려운 기간 내내 팀을 지켰던 선수를 머리에서 지우는 건 진정한 팬이라고 말할 수 없다.

손민한은 반드시 돌아온다. 그리고 손민한은 갈매기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갈매기들도 손민한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롯데가 2년 연속 가을잔치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롯데가 자랑하는 2000년대 최고의 투수가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 야구타임스 협력 블로거 이창섭(blog.naver.com/pbbless)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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