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ㅣ 손윤 기자]
LA 다저스의 감독인 조 토레가 뉴욕 양키스에 있던 1999년에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후에 "우리는 포스트시즌에서 전승했다. 야구는 인간이 하는 것이고, 왕이라고 불린 사나이는 인간이 아니다."고 말하면서, 포스트시즌에서 유일하게 1패를 안긴 선수를 왕이라고 칭하였다. 왕이라고 불린 사나이는 바로 역사상 최고의 투수 중의 한 명이라고 말해지고 있는 페드로 마르티네스로, 조 토레가 말한 이후로 그는 공식적으로 지구인이 아닌 '외계인'으로 인정되었다.

그의 키는 5피트 11인치로 180cm를 약간 상회하는 정도이고 몸무게는 88kg 정도이다. 메이저리그가 아닌 한국 야구에서도 180cm에 80kg은 왜소한 체형에 속한다. 그런 작은 체구를 가진 그이지만, 믿을 수 없게도 2m에 육박하는 키와 100kg은 간단하게 넘어가는 수많은 '떡대'들을 무기력하게 돌려 세웠다.

특히 당대 최고의 타자들인 배리 라킨, 래리 워커, 새미 소사, 마크 맥과이어, 제프 배그웰 등을 4타자 연속을 포함해서 6타자를 상대로 2이닝 동안 5탈삼진을 기록한 1999년의 올스타전은 그가 왜 외계인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장면들이었다. 그가 야구공으로 무수한 골리앗들을 해치우는 다윗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00마일에 육박하는 패스트볼과 항상 '믿을 수 없는'이나 '상식을 뛰어 넘는' 등의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커브, 체인지업, 서클 체인지업, 스크류볼, 컷 패스트볼  등에 칼날같은 제구력 등 투수가 갖추어야 할 모든 부분을 완벽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구사한 어느 구종이나 당대 최고의 볼 중에 하나로 손꼽혔다.

외계인으로 진화하기까지

도미니카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어릴 때에 야구공이나 글러브를 살 돈이 없어서, 골판지로 만든 글러브와 돌멩이로 캐치볼을 했다고 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베이스볼 드림을 꿈꾸던 그는 16세이던 1988년에 다저스의 스카우터의 눈에 띄어서 형인 라몬 마르티네즈가 있던 LA 다저스에 입단하였다. 공교롭게도 그가 다저스에 입단한 1988년에 형인 라몬 마르티네스는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였다. 2년간 도미니카의 섬머리그에서 숙성의 시간을 거친 그는 199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본격적으로 다저스의 팜에서 성장의 시간을 가졌다.

1990년에 루키리그에서 8승 3패 평균 자책 3.62 등을 기록한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1991년에는 1A에서 시즌을 맞이했지만, 8승 무패 평균 자책 2.05 등을 기록한 후에 2A로 승격되었다. 2A에서도 평균 자책 1.76 등을 기록하는 대활약을 펼친 그는 시즌 막판에는 3A로 가서 3승 3패 평균 자책 3.66 등을 기록하였다. 아직 20살도 되지 않은 19살의 소년이 단 한 해에 1A에서 2A, 3A 로 승격된 경우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초고속 승격이었고, 레벨이 다른 그의 재능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한 해였다.

3A에서 시즌을 시작한 1992년에는 지나치게 빠른 고속 승격으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게다가 승운도 따르지 않아서 7승 6패 평균 자책 3.81 등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시즌 막판에는 메이저리그에 승격되었고, 9월 24일 신시네티 레즈와의 경기에서 8회에 구원등판하면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장식하였다 9월 30일에는 역시 레즈를 상대로 선발 데뷔전을 가졌다. 6이닝 4피안타 2실점, 7탈삼진으로 호투를 펼쳤지만, 타선의 엄호를 받지 못하고 패전의 멍에를 썼다.

1993년에는 중간 계투로 활약한 그는 5월 5일 메츠와의 경기에서 감격적인 메이저리그 첫승을 신고하는 등 10승 5패 2세이브 14홀드와 평균 자책 2.61 등을 기록하였다. 107이닝을 던지는 동안 119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메이저리그에서도 서서히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다저스의 평가는 매우 냉담하였다. 토미 라소다를 비롯한 다저스의 코칭스탭들은 그의 체격 조건을 이유로 멀지 않아서 부상을 당할 것이라고, 즉 메이저리그에서 롱런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다저스의 팜에는 페드로 아스타시오, 이스마엘 발데스, 대런 드라이포트 등 파이어볼러 등이 넘쳐나고 있던 상황이기에, 마운드를 정리할 필요도 있었다.

결국 다저스는 2루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올스타 2루수인 호타준족의 델리노 드쉴즈의 댓가로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시켰다. 결과적으로 엑스포스에서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외계인으로서 진가를 드러내면서 이 트레이드는 다저스 구단 역대 최악의 트레이드라고 말해지고 있다.

파란피가 흐르는 토미 라소다 역시 후에 자신이 범한 가장 큰 실책이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페드로 마르티네스 자신 역시도 이 트레이드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진가를 몰라준 다저스에 대한 섭섭함을 은연중에 나타내고 있다.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마운드가 두터운 다저스를 떠나서 엑스포스로 이적하게 된 것은 그의 야구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터닝 포인트였던 셈이다.

선발진에 공백이 있던 엑스포스로 이적한 첫해에 그는 23번 선발 등판(24경기 출전)해서 11승 5패, 방어율 3.42 등을 거두면서 선발 투수로 명함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5년에는 6월 3일 파드레스와의 경기에서 9이닝 동안 단 한명의 타자도 출루시키지 않는 퍼펙트 경기를 기록하는 역사에 남을 호투를 펼쳤다. 하지만, 팀 타선도 파드레스의 조이 해밀턴에게 완전히 틀어 막히면서, 승부는 연장으로 돌입했다. 연장 10회초에 간신히 엑스포스가 0의 행진을 끝내면서 스코어보드에 1을 올렸지만, 10회말에 선두타자인 비프 로버츠에게 2루타를 허용하면서 투수들의 꿈인 퍼펙트게임은 물거품이 되었다.

완전 시합이라는 대기록은 아쉽게도 달성하지 못했지만, 이 경기를 통해서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팬과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3년 연속 두자리 수인 14승 10패, 평균 자책 3.51 등을 올린 그는 이적 2년 만에 자타공히 엑스포스의 에이스로 성장하였다. 1996년에는 13승 10패, 평균 자책 3.70 등과 함께 처음으로 200(216과 ⅔이닝) - 200(222탈삼진)을 기록하면서, 엑스포스를 넘어서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자리를 잡았다. 엘리베이트를 타고 수직 상승하던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성장을 넘어서 진화를 보인 것은 1997년이었다.

부상으로 시즌이 개막한 후에 합류한 그는 4월 15일 애스트로스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경기를 6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승리를 거둔 것을 시작으로 해서, 5월 1일 역시 애스트로스를 상대로 3피안타만 허용한 끝에 시즌 첫 완투 완봉승을 거두는 등 8연승의 호조를 보였다. 하지만, 이후로 팀 타선의 도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9이닝 동안 5피안타 2실점 12탈삼진으로 호투를 기록하고서도 패배를 기록하기도 하였지만, 6월에는 6경기 연속 두자리수 탈삼진을 올리는 등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 10승 4패, 7완투(2완봉), 평균 자책 1.74, 154탈삼진 등을 기록하면서 페드로 마르티네스라는 이름은 타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로도 그의 페이스는 떨어질 줄 몰랐고, 시즌이 끝났을 때에 그가 거둔 성적표에는 17승 8패, 13완투(4완봉), 평균 자책 1.90, 305탈삼진 등이 써여져 있었고, 첫 개인타이틀인 평균 자책 1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시즌 초반에 결장한 핸디캡이 있는데도 리그 사이영상 투표에서는 그렉 매덕스 등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누르면서 처음으로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하였다.

워싱턴 내셔널스의 전신인 몬트리올 엑스포스는 '메이저리그의 사관학교'라고 불렸다. 이 말은 빈약한 재정 탓으로 인해 유망주를 발굴해서 스타로 성장한 선수들을 메이저리그의 다른 팀들로 트레이드시켰기에 붙었던 불명예스러운 별명이었다. FA를 앞두고서 폭등한 몸값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엑스포스는 페드로 마르티네스도 트레이드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

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한 그를 놓고서 많은 구단들이 군침을 흘렸지만, 막상 영입할 의사를 보이는 구단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2년 연속 200이닝 이상을 소화하는 등 혹사당한 그였기에, 다저스와 마찬가지로 부상의 위험성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가운데 칼을 빼던 구단이 바로 전년도에 로저 클레멘스와 결별하면서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있던 보스톤 레드삭스였다.

페드로 마르티네스라면 팬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고, 또한 밤비노의 망령에서 탈출할 수 있는 답안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레드삭스는 팀내 유망주인 토니 아마스 Jr.와 칼 파바노를 엑스포스에 넘겨주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6년간 7,500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액의 장기 계약을 맺었다.

부상의 위험성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페드로 마르티네스에게 거액의 장기 계약을 맺은 레드삭스를 두고서 그 당시에는 다들 손담비라도 된듯이 "미쳤어"를 연발하였다. 주위의 우려에도 아랑 곳 하지 않고 자신을 선택해 준 것에 대해서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레드삭스의 오너인 래리 루치아노를 "자신의 재능을 정당하게 평가해 준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고마움을 표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다저스의 어이 없는 판단으로 미국 본토에서 추방되었던 외계인이 우여곡절 끝에 다시 미국으로 리턴한 것이었다. 그의 복귀로 유령이 살고 있다는 저주 받은 보스톤에서 외계인과 망령이 펼치는 한판 승부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 손윤 기자(블로그 : yagoo.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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