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 이준목] '국민타자' 이승엽(33)에게 2009년은 과연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올해로 일본무대 6년차인 이승엽은 지난 14일 KIA 타이거즈와의 한일 클럽 챔피언십 경기를 끝으로 파란만장했던 2009시즌 일정을 모두 마감했다.

이승엽의 소속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올해 니혼햄 파이터스와의 일본시리즈에서 4승 2패로 정상에 오르며 통산 21번째 정상에 올랐다. 이승엽 개인으로서는 2005년 지바 롯데 시절이후 두 번째,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고서는 처음 맛본 우승이다. 삼성에서 활약하던 2002년 한국시리즈 정상을 차지한 이승엽으로서는, 한일 프로무대에서 각기 다른 소속팀 유니폼을 입고 모두 우승멤버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서 자랑스러운 이력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팀 성적을 떠나 이승엽 개인으로서는 결코 행복하지 못한 시즌이었다. 지난 두 번의 우승에 비교하면 이번 요미우리의 우승 과정에서 이승엽의 팀 공헌도는 너무나 미미했다. 7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29(223타수 51안타), 16홈런 36타점의 성적은, 팀 내 최고연봉을 자랑하는 외국인 선수의 기대치에 걸 맞는 활약이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45경기 타율 .248, 8홈런 27타점을 기록한 2008시즌보다도 나을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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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치부심한 2009시즌, '선구안'과 '롤러코스터'에 발목 잡히다.

사실 이승엽은 올 시즌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절치부심했다. 지난 2년간 고질적인 엄지손가락 부상과 잦은 대표팀 차출로 페이스를 찾지 못했던 이승엽은, 고심 끝에 김인식 감독의 간절한 러브콜을 고사하고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불참을 선언했다. 많은 이들은 어쩌면 마지막 태극마크가 될지도 몰랐던 그의 대표팀 사퇴를 아쉬워했지만, 그만큼 명예회복에 대한 의지가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이승엽 개인으로서는 최근 3년 사이에 유일하게 비시즌 동안 불필요한 체력소모 없이 다음 시즌을 준비할 수 있었다.

시범경기 때만해도 성과가 보이는 듯 했다. 이승엽은 시범 경기에서 총 19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302(53타수 16안타, 리그 11위)를 기록했고, 홈런(8개), 타점(17개), 장타율(0.774)의 3대 부문을 모두 석권하며 올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상승세는 오래 가지 못했다. 언제든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장타력은 여전했지만, 문제는 '선구안'이었다. 77경기에서 삼진만 65개를 당했고, 득점권타율도 고작 2할1푼5리에 불과했다. ‘공갈포’라는 오명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또한 이승엽은 올 시즌 중에 수차례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기복심한 타격감을 보여줬다. 전반기에만 두 자릿수 연속 무안타 행진을 기록한 것이 세 번이나 됐다. 첫 번째는 4월 22일부터 30일까지 16타석 연속 무안타를 기록했다. 타율이 한때 .125까지 떨어지자 참다못한 하라 감독에게 '플래툰 시스템'의 옵션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상대 투수에 따라 선발이 좌완이라면 이승엽이 선발타순에서 제외되는 식이었다.

5월 들어 6경기 연속안타를 기록하며 잠시 페이스를 회복한 이승엽은 플래툰 시스템을 극복하고 선발 라인업에 복귀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인터리그 개막과 함께 두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5월 25일부터 6월 7일까지 이승엽은 35타석 연속 무안타의 수모를 당하며 인터리그 성적도 타율 0.186(70타수 13안타)이라는 최악의 기록을 남겼다. 홈런은 5개를 쳤지만 승부에 영향을 미친 경우는 드물었고 영양가가 떨어진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인터리그가 끝난 후 재개된 센트럴리그 경기에서 이승엽은 6월 26일부터 28일까지 벌어진 야쿠르트와의 3연전을 통해 3게임 연속 홈런을 작렬하며 다시 주목받았다. 하지만 7월 들어 다시 방망이는 얼어붙었다. 7월 4일 주니치전에서 16호 홈런을 마지막으로 이후 7게임에서 24타석 동안 한 개의 안타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승엽은 결국 선발 라인업에서 또다시 제외되었고,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끔 대타요원으로 기용되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뜻하지 않은 허리통증까지 겹쳤다. 8월 3일 하라 감독은 이승엽에게 다시 2군행을 통보했고 시즌 막판까지 그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었다. 65일 만이던 10월 초순 1군에 합류했지만 정규 시즌 경기에는 나서지 않았다.

소속팀 요미우리가 이승엽 없이도 순항하며 36년만의 센트럴리그 3연패를 달성했다는 점도 이승엽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요미우리는 올 시즌 평균 팀 자책점 2.95를 기록한 특급 투수진의 위력과, 오가사와라 미치히로(31개)-알렉스 라미레스(31개)-아베 신노스케(32개)가 무려 94개의 홈런을 합작하며 이승엽의 공백을 무색하게 했다. 이승엽이 빠진 1루수 자리에는 원래 우익수였던 가메이 요시유키를 기용해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 좌타자 가메이는 올 시즌 타율 .290에 26홈런 71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새로운 주역으로 올라섰다.

이승엽은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간신히 팀에 복귀했지만 선발과 교체멤버를 오가며 타순도 8번까지 밀려나는 등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일본시리즈에서는 6경기에 모두 출장하여 12타수 3안타(타율 0.250) 1홈런 2타점을 기록했다. 3차전에서 0-2로 뒤진 2회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팀의 역전승을 견인한 것이 그나마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이승엽이 보여준 가장 인상적인 활약이었다.

▲ 기로에 선 '국민타자'의 미래

그렇다면 이승엽은 올 시즌 왜 실패했을까. 시즌 개막전만 해도 쾌조의 타격감을 유지하며 맹활약했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승엽은 올 시즌 타격 폼 수정을 통해 지난해 상체가 빨리 열리던 약점을 보완하여 잠시 효과를 거뒀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이승엽이 시범경기에서의 호조에 고무되어있는 동안, 오히려 상대 투수들은 이승엽의 타격 폼에 대한 분석을 마치고 '실전'에서는 다시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승엽은 몸 쪽 공을 의식하여 타격 스탠스를 지나치게 뒤로 잡았으나, 이번엔 장점이었던 바깥쪽 공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는 또 다른 약점을 노출하고 말았다. 인터리그 이후 재개된 리그 경기에서는 밀어 쳐서 외야로 뻗어나가는 타구들이 실종됐고, 잡아당겨서 넘기려다가 범타로 물러나거나 바깥쪽 유인구에 스탠딩 삼진을 당하는 장면이 늘어났다는 것은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냉정히 말해 '실투'만 아니라면 올해의 이승엽은 제구력이 되는 투수에게는 별로 위협적이지 않은 상대였다.

5월 갑작스럽게 찾아온 허리 통증에도 불구하고 출전을 강행한 것도 장기적으로 독이 되었다. 이승엽은 5월까지만 해도 타율 .304(79타수 24안타), 7홈런 16타점을 기록하며 성적이 좋았다. 하지만 지난해의 부진을 만회하겠다는 의욕과 팀 성적에 대한 책임감이 겹쳐, 휴식권유도 뿌리치고 무리를 했던 것이 타격밸런스를 무너뜨리는 부작용으로 나타났다.

2006년 일본 진출이후 역대 최고성적인 타율 .323 41홈런 108타점을 기록하며 요미우리와 4년 연장 계약을 맺었던 이승엽이지만, 2007년 타율 .274 30홈런 74타점을 기록한 이후 성적은 매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나마 지난 2년간은 부상이라는 확실한 이유라도 있었지만, 올해는 애지중지하던 태극마크마저 반납하고 소속팀에 충실했던 한해였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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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도 이승엽의 전망은 그리 밝은 편이 아니다. 요미우리 입단 초기에는 하라 감독과 구단의 확실한 신뢰를 받았지만 매년 하향세를 거듭하는 성적으로 믿음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내년에 메이저리그로 진출할 수 있는 옵션까지 포기하고 일찌감치 요미우리 잔류를 선언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일단 카메이나 다카하시 같은 일본 토종 스타들과 원점에서 포지션 경쟁을 다시 거쳐야한다. 몸값이 비싼데다 수비 포지션이 제한되어있고, 적지 않은 나이의 ‘용병’ 이승엽으로서는, 타격에서 확실한 강점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내년에도 플래툰이나 2군 신세를 면치 못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최근 몇 년간 계속된 이승엽의 하향세가 단순히 부상이나 일시적인 부진이 아니라, '노쇠화'가 아닌가하는 점이다. 이승엽은 원래부터 정교함이 두드러지는 타자는 아니다. 게다가 최근 2~3년간 일본리그에서 보여준 이승엽의 선구안은 기대 이하였고, 배트스피드나 정확성도 해마다 저하되고 있다. 이승엽이 올해 부진의 원인을 단순히 훈련양이나 부상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주소와 기량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선행되어야하는 이유다.

이승엽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내년이면 34세가 되는 이승엽은 어느덧 야구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해야할 시기다. 아직 국내 복귀를 논하기는 이른 시점이지만, 내년 시즌 성적에 따라 어쩌면 선택의 여지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 만일 내년에도 납득할만한 성적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나이와 몸값을 고려할 때 요미우리와의 재계약 여부를 떠나 아예 일본무대에서의 잔류 가능성 자체가 어두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냉정히 말해 미국진출은 이미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 처음 해외진출을 추진할 때나 절정의 기량을 선보였던 2006년 이후였다면 몰라도 나이나 성적 면에서 이미 메이저리그를 노릴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결국 이승엽으로서는 일본무대에서 다시 한 번 재도약을 노리거나, 국내로 복귀하여 유종의 미를 기약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 시즌 부활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요미우리 자이언츠, 삼성 라이언즈]

야구타임스 김홍석 편집인(블로그 : MLBspec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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