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 이준목] 빛이 있으면 항상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2009년을 빛낸 프로야구의 숱한 명장면들 속에 팬들의 아쉬움과 탄식을 자아낸 씁쓸한 순간에는 어떤 장면이 있었을까. 2009 프로야구의 가장 씁쓸한 장면들만으로 모아본 팀이나 경기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 배영수의 ‘승률’

7.7%! 인터넷 대부업체의 이자율이 아니다. 한때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끈 '에이스'이자, 국내 최고의 우완 정통파 투수로 꼽혔던 배영수의 2009시즌 승률이다. 배영수는 올 시즌 23경기(선발 12경기)에 등판하여 75⅔이닝 동안 1승 12패, 평균자책점 7.26을 기록했다.

올 시즌 4번째 등판이었던 지난 4월 28일 히어로즈와의 대구 홈경기에서 5이닝 1실점으로 마수걸이 승리를 챙긴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 기록이었다. 2006년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맞바꾼 팔꿈치는, 토미존 수술 이전까지 리그 다승왕과 MVP, 3년 연속 2점대 평균자책점에 빛나던 최고의 투수를 일약 '패배의 아이콘'으로 바꾸어놓고 말았다.

▲ 한기주의 ‘불쇼’

베이징올림픽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KIA 타이거즈 부동의 마무리로 꼽혔던 한기주는 올 시즌 26게임에 등판하여 4승 5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4.24의 초라한 성적에 그쳤다. 전반기에만 올 시즌 최다인 무려 8개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는 화려한 '불쇼'로 팀의 승리를 남김없이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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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날린 승리 가운데 절반만 챙겼더라도, KIA가 정규시즌 1위 자리를 놓고 시즌 막판까지 SK와 살얼음 경쟁을 펼치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우승까지 차지한 KIA의 저력이 대단하다. 올해는 KIA의 우승을 구경꾼으로 지켜봐야했던 한기주지만, 팔꿈치 수술을 받고 내년에는 선발투수로서의 귀환을 노리고 있다. 올림픽도, 한국시리즈도, 무임승차는 이제 그만!

▲ 조인성- 심수창의 ‘단합’

LG 조인성은 데뷔 초창기 시절부터 진갑용- 박경완과 더불어 대형포수로 기대를 모았지만, 정작 불안한 투수리드와 더딘 성장으로 인해 팬들에게 가장 많은 실망감을 준 선수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8월 6일 잠실 KIA전 도중 후배투수인 심수창과 함께 그라운드 위에서 이날의 경기에 관하여 심도 있고 열띤 토론을 펼쳤는데, 문제는 이 장면이 TV중계화면에 잡혀 전국으로 생방송되었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이날 7연패에 빠진 LG는, 조인성과 심수창의 '10초 토론'을 통해 ‘망가진 팀의 전형을 보여준 대표적인 장면’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한동안 후폭풍에 시달려야했다. 두 선수는 이후 2군으로 문책성 강등을 당했고, 특히 선배이면서도 안방마님으로서 후배를 너그럽게 포용하지 못한 조인성에게 더 많은 비난이 향했다.

▲ 이대호의 ‘터널’

현역 한국프로야구 최강의 타자 중 한명으로 꼽히는 이대호지만, 그에게는 ‘자동문’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닉네임도 존재한다. 과연 허리는 굽혀질까? 빠른 타구를 쫓아갈 수는 있을까? 보는 이들을 항상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이대호의 3루수비로 인하여 유격수의 수비부담이 늘어난 것은 당연지사. 팬들에게 언제나 롤러코스터를 보는듯한 짜릿함을 선사하는 롯데의 내야수비, 그 중심에는 언제 활짝 개방될지 모르는 ‘대호 터널’이 있었다. 이대호가 원하는 것은 로이스터 감독의 무한 신뢰와 낙천주의가 아니라, 지명타자나 1루수로의 완전한 전향이 아니었을까.

▲ 고효준의 ‘컨트롤’

올 시즌 고효준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전천후 계투로 활약,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에 고전했던 SK 마운드의 한 축을 담당했다. 하지만 박찬호의 전성기를 능가하는 ‘널뛰기 제구력’은 여러 차례 예측불허의 피칭으로 팬들의 가슴을 졸이기 일쑤였다.

올 시즌 39게임에 등판해 11승10패 2세이브, 탈삼진 152개(3위)를 기록한 고효준은 126⅔이닝으로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하고도 20개의 폭투로 이 부문 1위에 올랐고, 볼넷도 81개를 허용하며 3위에 올랐다. 볼넷 1위(109개), 폭투 2위(19개)를 기록한 삼성 크루세타(157이닝)는 고효준보다 30이닝을 더 던졌다. 또한 고효준은 몸에 맞는 볼도 14개를 기록하며 2위에 올랐는데, 이따금씩 본의 아니게 상대 타자들의 머리 근처를 비행하는 피칭은 여러 차례 타자들을 그라운드 바닥에 쓰러뜨리며, 구위와는 또 별개의 ‘공포’를 상대팀에 선사하곤 했다.

▲ 박명환의 ‘건강’

LG가 지난 2007년 4년간 최대 40억의 거액을 들여 서울 라이벌 두산으로부터 영입했던 ‘유리 몸’ 박명환이 지난 3년 동안 쌍둥이 유니폼을 입고 나선 경기는 단 36게임. 그나마 첫해인 2007년 27게임에서 155와 1/3이닝 간 10승 6패, 평균자책점 3.19로 반짝한 것을 제외하면, 최근 2년간은 9경기에서 총 39이닝을 소화하며 승리 없이 4패만을 기록했을 뿐이다. 올 시즌 봉중근을 받쳐줄 2선발의 부재로 속을 태웠던 LG로서는 박명환을 볼 때마다 본전 생각이 간절했을 법하다. 내년에는 KBO에 룰 개정을 의뢰해서 박명환이 무사히 등판을 마칠 수 있도록 모자 속에 양배추를 넣는 것을 허용하는 방안이라도 검토해야할지도.

▲ 두산의 ‘외국인 선수’

올 시즌 프로야구 8개 구단을 통틀어 외국인 선수 복을 가장 못 누린 구단은 바로 두산이 아닐까. 2007년을 풍미한 리오스와 랜들 이후 이렇다 할 외국인 선수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두산은, 시즌 중반 ‘육성형 용병’이라는 초유의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세데뇨와 니코스키를 수혈했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기대만큼 자라주지 못했다.

세데뇨는 마이너리그 더블A 경험이 고작이고 니코스키는 SK에서 퇴출되었던 선수. 올 시즌 성적도 세데뇨가 4승 7패 1홀드 평균자책점 5.70, 니코스키가 4승 8패 평균자책점 3.78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니코스키는 PO 1차전 이후 부상으로 중도하차했고, 세데뇨는 플레이오프 초반 호투하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대량실점의 빌미를 제공하며 무너져 내렸다. 8개 구단 중 최악의 선발진으로 속을 끓인 두산이 내년에는 제대로 된 이닝이터형 외국인 투수를 구할 수 있을까.

▲ 가르시아의 ‘선구안’

한여름에 사직구장을 찾은 팬들은 해운대의 바닷바람만큼이나 거침없이 허공을 가르는 ‘갈풍기’의 위력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다만 롯데 홈팬들에게는 시원한 바람이 아니라 혈압을 오르게 하는 사막의 더운 모래바람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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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타점머신으로 롯데의 9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가르시아는 올 시즌 공갈포로 전락하며 퇴출의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시즌 후반기 부활하며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29홈런 84타점을 기록할 동안 삼진을 무려 124개나 당하며 갈풍기라는 달갑지 않은 닉네임을 얻어야했다. 득점권 타율도 .246에 불과했다. 그나마 강견을 앞세운 특유의 송구능력과 부산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화려한 쇼맨십이 없었다면, 진즉에 퇴출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 한화 영건 3인방의 ‘배팅볼’

올해 한화는 평균 자책점 5.70으로 리그 꼴찌를 기록했다. 여기에는 류현진을 제외하고 안영명-김혁민-유원상으로 이어지는 한화 영건 3인방의 ‘배팅볼 피칭’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안영명은 규정이닝을 채운 16명의 투수 중 가장 나쁜 5.18의 자책점을 기록했고, 각각 100이닝을 넘긴 유원상(107이닝 6.64)과 김혁민(116⅔이닝 7.87)은 더욱 나빴다.

홈런공장장 1위를 차지한 안영명(34개)을 비롯하여, 김혁민(24개)-유원상(23개)-류현진(19개)까지 한화는 유일하게 4명의 투수가 피홈런 상위 10위권에 이름을 올렸으며, 이들이 내준 홈런 합계만 무려 100개에 이른다. 또한 한화는 도루 허용에서 있어서도 무려 141개를 상대팀에 헌납하며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 3인방이 있었기에 올 시즌의 한화는 프로야구 ‘타고투저’ 현상과 전력평준화에 크게 이바지 했다고 할 만하다.

▲ 김재박의 ‘배려’

올해를 끝으로 LG구단와의 3년 계약이 만료된 김재박 감독이 남긴 최후의 업적은 바로 한국시리즈 우승도, PS진출도 아닌 바로 ‘제자 타이틀 밀어주기’였다. 시즌 막판 치열한 타격왕 경쟁을 펼치고 있던 홍성흔(롯데)과 박용택(LG)은 9월 25일 경기에서 맞붙게 되었다. 그러나 김재박 감독은 타율 경쟁에서 근소하게 앞서던 박용택을 이날 경기에 내보내지 않았고, LG 투수들은 홍성흔에게 무려 4개의 볼넷을 내주며 승부를 기피했다.

경기가 끝나고 비판 여론에 대하여 김재박 감독은 "예전에는 더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여론이 악화되자 "내가 지시한 게 아니라 선수들이 알아서 한 것"이라며 말을 바꿨다. 설사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감독의 묵인 없이 그와 같은 일이 가능했을까. 어설픈 배려로 인하여 박용택의 타격왕 기록에는 영원한 오점이 남겨지게 되었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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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28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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