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무승부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때
[야구타임스 | 이준목] 지난 6월 25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KIA-SK전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희한한 장면이 연출됐다. 5-5 동점으로 팽팽하게 맞서던 12회말, SK의 마지막 수비에서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바로 3루수 최정이었다. 불펜에 남아있는 마지막 투수 윤길현은 1루수로 투입됐다.
모두 어안이 벙벙해질 찰나, 최정이 연속안타와 볼넷을 내주며 무사 2.3루에 몰리자 김성근 감독은 1루를 제외한 내야진을 모두 좌측으로 이동시키는 괴상망측한 수비시프트까지 구사했다. 경기는 결국 최정의 끝내기 폭투로 인해 KIA의 승리로 다소 허무하게 끝났지만, 이날 SK가 보여준 상상을 초월하는 경기운영은 '고의 패배' 의혹을 자아내며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김성근 감독은 후일 논란이 격화되자 고의가 아니었다고 적극 해명했지만, 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사실 이런 장면은 올해부터 새로운 무승부 제도가 도입되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이날 12회 초에 점수를 내지 못한 SK로서는 어차피 KIA의 마지막 이닝 공격을 막아내더라도 이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올해 승률 계산에서 무승부는 패배나 마찬가지로 기록된다.
SK뿐만 아니라 다른 팀들이라 해도 12회까지 치열한 접전을 벌인 뒤에 패배나 다름없는 무승부가 선언된다면 그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그것도 원정팀으로서는 이미 12회 초를 마친 뒤 이미 패배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치르는 12회 말은 그야말로 힘 빠지는 순간이다.
공교롭게도 김성근 감독은 기회가 될 때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탁상공론을 비판하면서 새 무승부 제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해온 인물이다. 만일 '무승부=패'가 아니었다면 김성근 감독이 그런 식의 선수운용을 했을까? 물론 정말로 내보낼 선수가 마땅치 않았다고 해도, “프로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평소 입버릇처럼 말하던 김성근 감독의 지론에 위배되는 행동이었음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6.25 사태’는, 무승부 제도의 폐해가 불러온 예고된 해프닝이었다고 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 프로야구의 애물단지, ‘무승부’
모든 스포츠의 미덕은 한정된 룰 안에서 어떻게든 승부를 가리는데 있다. '승점제'라는 큰 틀 안에서 정규리그 경기에 한하여 무승부를 인정하는 축구를 제외하면, 모든 종목들은 기본적으로 반드시 승부를 가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무승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야구만큼 무승부제도가 뜨거운 감자가 되는 종목도 없다. 작게는 무승부라는 제도 자체가 야구의 취지에 어울리는가 하는 적절성에 의문을 가지게 되고, 크게는 순위집계에서 무승부를 승률에 어떻게 반영할지를 놓고 고민하게 된다.
일단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무승부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무승부가 없다면 복잡한 승률 계산도 필요 없고, 프로농구처럼 다승만으로 확실한 순위결정 방법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다수의 야구팬들이 가장 폭넓게 지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2008년에 한 차례 시행했다가 한계에 부딪힌바 있다.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데 대한 야구인들의 불만이 컸다. '무박 2일'간 치러졌던 끝장 승부의 사례에서와 같이 선수들의 체력 문제가 지적되어 시행 1년 만에 다시 무승부 규정을 부활시킬 수밖에 없었다.
무승부를 인정하더라도 이를 순위집계에서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가 문제다. 다승으로만 순위를 결정하는 방법도 있고, 무승부를 0.5승으로 인정하여 승률에 포함시키거나, 아니면 전체 경기에서 무승부를 제외한 나머지 경기의 승패로 승률을 계산하는 방법도 있다.
올해는 무승부 제도를 새롭게 도입하되, 무승부를 패배나 마찬가지로 규정하는 새로운 승률 계산법이 적용되어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무승부를 0.5승으로 승률에 포함할 경우, 경기 막판에 양 팀이 암묵적인 비기기 작전을 펼치면서 경기 자체가 시들해지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6.25 경기 포기 사태처럼 예상치 못한 돌발적인 상황들이 등장하면서 그 취지는 무색해졌다. 지지는 않았는데 패배로 취급되는 상황에서 12회까지 고생하며 선전한 팀들로서는 맥이 빠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만일 무승부를 패배로 규정하는 현행 제도 하에서 정규시즌 막판 순위집계나, SK의 19연승 행진 속에 끼어있던 1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도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모순에 처했다. 특히 가장 큰 불만을 드러냈던 것은, 무승부 제도 자체에 반대하는 야구팬들의 아쉬움이었다.
▲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 ‘제3의 방법은 없는가?’
많은 야구팬들은 무승부 제도의 완전폐지와 끝장승부의 부활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반면 현장의 야구인들 중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아무리 야구가 ‘타임아웃이 없는 스포츠’라지만,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여 선수층도 얇은 한국의 현실상 성급한 무승부제도의 폐지는 오히려 경기의 질을 떨어뜨리고 선수들만 혹사시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반면, 무제한 연장제 찬성론자들은 무승부의 폐지가 경기의 박진감을 높일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현실적으로 무제한 연장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무박2일 승부’같은 ‘특수한 상황’들이 과연 일 년에 몇 경기나 나오겠느냐며, 현장의 반대 목소리에 대하여 핑계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가장 깊이 생각해봐야할 문제는 결국 ‘경기의 질’이다. 무승부 제도 자체도 문제지만, 단순히 무승부를 없애고 무제한 연장을 통해 끝장승부를 가린다고 해서 경기의 박진감이나 수준도 덩달아 높아지느냐는 전혀 별개이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3일 열린 두산과 한화의 18회 끝장승부가 좋은 예다. 이날 경기는 각종 기록을 양산하여 화젯거리로는 화려했을지 모르지만, 정작 실제로는 양 팀 타선의 무기력함이 드러난 졸전에 가까웠다. 연장에 접어들고 경기가 길어질수록 선수들의 집중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투수와 타자 할 것 없이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안타나 타점하나 없이 4연속 볼넷에 이은 밀어내기로 승부가 갈린 데서 보듯, 양 팀 모두 승리를 향한 의욕과는 거리가 먼 승부였다. 지켜보는 관중들도 실망스럽고, 이긴 팀이나 진 팀이나 쑥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승부에 대한 의욕이나 열정이 없고, 선수들을 지치게 해서 다음날까지 영향을 미치게 하는 끝장승부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기존의 무승부 제도를 유지하는 것도 승률 계산에서 어떻게든 문제의 소지가 남을 수밖에 없다. 만일 반드시 승부를 가려야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지난 베이징올림픽에서 선보였던 ‘승부치기’ 제도의 도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승부치기는 11회 이후에 누상에 시작부터 주자를 배치하고 이닝을 소화하는 방식이다. 처음 올림픽과 아마야구를 통해 이 제도가 처음 알려졌을 때만 하더라도 ‘축구도 아니고 야구에 무슨 승부치기냐’라며 냉소적인 반응이 적지 않았으나, 막상 뚜껑을 열자 승부치기가 충분히 경기의 박진감을 높이면서도 빠른 시간 안에 승부를 가릴 수 있는 유용한 제도임을 보여줬다. 직접 승부치기를 체험한 선수들의 반응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데 주목할 만하다.
승부치기의 장점은 경기시간 단축과 다양한 작전야구를 통해 활발한 타격전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투수들에게는 불리하지만, 적어도 불필요한 혹사는 방지할 수 있다. 기록관리상의 문제가 된다면, 승부치기 이닝의 자책점이나 타점은 공식기록에는 포함시키지 않는 방법도 있다.
방법은 다양하다. 끝장승부와 일정부분 결합시켜 일정한 이닝(12~15이닝)이나 시간까지는 제한없이 계속 연장전을 치르되, 승부를 가리지 못할 경우에는 '승부치기'로 결판을 낼 수도 있다. 또한, 정규시즌에는 승부치기를 도입하고, 플레이오프나 한국시리즈 같은 단기전에서는 무승부 없이 '끝장 승부'를 치르는 것으로 운용의 묘를 꾀할 수도 있다.
승부치기를 가리켜 막연히 야구의 미덕에 위배된다고 반대하는 이들도 있지만, 적어도 무승부 제도하에서의 '고의 패배'나, 쓸데없이 선수들의 혹사만 부추기는 끝장 승부보다 더 웃기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무승부제도건 끝장승부건, 혹은 승부치기건, 관건은 '운용의 묘'에 달려있다. 야구라는 스포츠나 무승부 제도는 모두 인간의 필요성에 의하여 창조된 룰이다.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키는 제도란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감안할 때 현실과 여론 사이에서 어느 정도 합리적인 절충안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는 지금까지 KBO의 정책결정들은 팬들과 현장의 목소리, 어느 쪽의 의견도 반영되지 못한 일방통행으로 이루어졌고, 여론의 추이에 따라 일관성 없이 갈팡질팡하기 일쑤였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무승부제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운용할지는, 팬들은 물론이고 전문가와 야구인들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여론이 엇갈리는 문제다. 끝장승부를 하건 무승부제도를 하건 이런저런 '핑계'와 불만은 계속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어떤 제도이건 그 취지를 살리되 단점만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얼마나 많은 장점이 있는지를 먼저 판단하고 최대한의 합의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나가는 '발상의 전환과 노력'에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 내년에는 팬과 현장의 목소리를 함께 만족시킬 수 있는 KBO의 ‘묘를 살린 정책’을 기대해 본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야구타임스 김홍석 편집인(블로그 : MLBspec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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