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목 칼럼
2009/12/09 13:34
한-미-일 프로야구 '최고 명가'는 누구?
[야구타임스 | 이준목] 올 시즌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3개국의 프로야구 리그는 모두 ‘전통의 명가’들이 오랜만에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의 KIA 타이거즈, 미국의 뉴욕 양키스, 일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모두 자국 리그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리그의 역사를 대표하는 명문 중의 명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 2009년은 ‘명가부활의 해’
뉴욕 양키스는 올해 월드시리즈에서 박찬호가 있는 필라델피아를 꺾고 통산 27번째 정상에 올랐으며,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니혼햄을 물리치고 통산 21번째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역사로는 막내 격인 KIA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에서 SK와이번스와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친 끝에 V10을 달성하며, 전신 해태 시절의 영광을 이어받아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두 자릿수 우승’의 반열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또한 3팀은 나란히 한동안 부침을 겪다가 오랜만에 정상을 탈환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양키스는 2000년 이후 9년만의 우승이고, 요미우리는 2002년 이후 7년만이다. 가장 오랫동안 우승을 맛보지 못했던 타이거즈는 ‘해태 왕조’ 시절이던 97시즌 이후 12년 만에 정상의 자리에 복귀했으며, KIA로 인수된 이후로는 첫 우승이기도 하다.
세 팀은 모두 자국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 명가이지만, 같은 해 동반우승을 차지한 것은 올 시즌이 처음이었다. KIA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가 요미우리와 89년에, 뉴욕 양키스와는 96년 한차례씩 같이 정상을 밟아본 것이 전부다. 3개국 중 가장 늦게 출범한 한국 프로야구가 1982년에 시작했으니, 이때를 출발점으로 했을 때 세 팀의 전성기가 각기 달랐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초창기인 80년대 초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한국야구는 명실상부한 ‘해태 왕조’의 시대였다. 해태는 83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97년까지(86∼89, 91, 93, 96∼97) 16년 동안 무려 9차례나 정상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특히 한국시리즈에 올라서는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는 진기록을 세웠다.
공교롭게도 해태 타이거즈가 화려한 전성기를 보내던 시절, 뉴욕 양키스는 희대의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 양키스는 통산 22번째 우승을 차지했던 1978시즌 이후 17년 동안이나 무관에 그치다가 90년대 중반부터 5시즌 간 4차례(96, 98-2000) 정상에 오르며 명가의 자존심을 회복했다. 하지만 양키스가 부활하던 시기에는 타이거즈가 97시즌 우승을 끝으로 12년간 정상문턱에 멀어졌고, IMF 파동으로 모기업이 해태에서 KIA로 인수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요미우리는 70년대 초반까지 독보적인 전성기를 보냈으나, 이후 일본야구에 전격적으로 도입된 드래프트 제도의 등장과 전력평준화의 바람에 밀려 한동안 침체기를 겪기도 했다. 요미우리는 일본시리즈가 처음 도입된 1950년부터 73년까지 9연패를 포함해 총 16차례의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며 1.5년에 한 번 꼴로 정상에 올랐지만, 80년대 이후로는 올 시즌까지 총 6차례(81,89,94,00,02,09) 정상에 올랐고 연속 우승은 한 번도 없었다.
▲ 이 기록은 우리가 최고!
리그의 역사는 곧 우승 기록과 비례하고, 우승은 곧 전통으로 이어진다.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 월드시리즈가 도입된 것이 1903년부터였고, 올해까지 총 105회가 치러진(1904, 1994년 제외) 결과 양키스가 총 27회나 정상을 차지했는데 이것은 한-미-일 3개국은 물론이고 북미 프로스포츠를 통틀어서도 최다 우승기록이다.
3개국 역대 최다연속 우승기록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보유하고 있다. 요미우리는 나가시마 시게오와 오 사다하루의 ‘ON포’로 기억되는 황금세대를 앞세워 1965년부터 73년까지 전무후무한 리그 9연패의 대업을 이뤘다. 뉴욕 양키스는 1949∼53년 5연패를 한 차례 기록한바있으며, KIA의 전신 해태는 1986∼89년 4년 연속 패권을 차지한 바 있다. 이것은 모두 자국리그의 최다 연속 우승기록이기도 하다.
출범 28년의 짧은 역사를 지닌 한국 프로야구지만, 한 가지 내세울 수 있는 기록은 타이거즈가 한미일 3개 명가 중 ‘우승 확률’로만 따지면 최고라는 점이다. 타이거즈는 82년부터 2009년까지 총 27차례(85년은 삼성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 무산) 치러진 한국시리즈에서 10회나 정상에 올라 무려 37%의 높은 우승확률을 기록했다. 햇수로 치면 2.8년에 한 번 꼴로 정상에 오른 셈이다.
2위는 총 60회의 일본시리즈에서 21회 정상에 오르며 35%(2.9년)의 우승확률을 보여준 요미우리, 양키스는 25.7%(3.9년)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특히 한국시리즈의 V10의 역사동안 타이거즈가 결승전 진출 시 ‘승률 100%’의 신화는 아직까지 깨지지 않는 전설로 미국과 일본에서도 유래가 없는 기록이다.
▲ ‘자본이 곧 승리’ VS ‘돈보다는 열정’
뉴욕 양키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각각 미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 인기구단인 동시에, 한편으로 가장 많은 ‘안티팬’을 보유한 구단이기도 하다. 양키스는 지금도 공공연하게 미국 팬들 사이에서 ‘악의 제국’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일본 국민의 70% 이상이 자이언츠팬이라는 국민구단 요미우리도 그에 필적하는 ‘안티 교진’세력의 끊임없는 견제에 시달리고 있다.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스타플레이어들을 싹쓸이하여 시장 질서를 파괴하고 ‘우승을 돈으로 사는 팀’이라는 인식이 강한 탓이다.
양키스는 지난 시즌 연봉으로만 무려 2억2,220만 달러(약 2,666억원)를 쏟아 붓는 등 10년 연속 메이저리그 1위를 기록했으며, 연봉 총액 상한선을 넘긴 사치세(Luxury tax)로만 무려 2,690만 달러(약 323억원)를 지불했다. 9년 연속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을 자랑하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1년 몸값만 해도 무려 3천300만 달러에 육박하며, 이는 웬만한 중소도시 구단의 전체 페이롤과 맞먹는 수준이다. 작년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도 C.C. 사바시아, A.J. 버넷, 마크 테세이라 등 대어들을 싹쓸이하는데 무려 4억2천만 달러 이상을 지불했다. 그리고 투자는 곧 우승으로 이어졌다.
요미우리도 만만치 않다. 올 시즌 요미우리의 총 연봉은 45억5000만엔(377억 7000만원)이며, 이중 고액 연봉자 25명을 중심으로 한 선수단 평균연봉은 1억1660만엔(15억1082만원)에 이른다. 팀 내 최고 연봉자는 이승엽(6억엔)이며, 라미레스(5억엔)와 오가사와라(3억8000만엔)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그나마 우에하라 고지와 니오카 도모히로 등 몇 몇 고액연봉자들이 이탈했음에도 이 정도다.

반면 타이거즈는 리그 최다우승팀이지만 양키스나 요미우리와는 태생적으로 다소 상이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KIA 구단의 올 시즌 총 연봉은 약 37억2천만원(외국인 선수 제외)으로 국내에서도 중하위권에 불과하다. 미국-일본과 시장과 인프라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돋보이는 부분이다.
타이거즈는 8개 구단 중에서 롯데 자이언츠와 더불어 가장 두드러진 지역색을 가지고 있으며, 최고의 명가이기는 하지만 전국구 인기구단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대도시를 연고로 하는 부자구단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타이거즈의 연고지인 광주는 광역시임에도 인구가 약 144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타이거즈 구단은 전신인 해태시절부터 과감한 투자나 선수영입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타이거즈는 야구가 단지 돈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출범 초기부터 타이거즈는 이렇다 할 외부 선수영입이나 투자 없이도, 특유의 끈끈한 팀워크와 승부근성을 앞세워 부자구단들을 물리치고 최다우승의 기록을 세우는 이변을 연출했다.
첫 출발이 다소 정략적인 목적으로 출범했던 한국 프로야구에서 타이거즈의 신화는 ‘작지만 강한 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지역 팬들의 자존심을 드높이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타이거즈의 ‘V10 신화’는 자본이 곧 승리를 지배하는 현대 프로스포츠 세계의 고정관념을 깬 독특한 사례로 꼽힌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야구타임스 김홍석 편집인(블로그 : MLBspec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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