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 이준목] 홈런은 흔히 ‘야구의 꽃’으로 불린다. ‘결정적 한 방’으로 경기의 흐름을 뒤바꾸거나 아예 끝낼 수도 있다. 타자가 느끼는 짜릿한 손맛과 관중들의 환호가 어우러지는 홈런은 야구에서 가장 호쾌한 장면중의 하나다.

한국프로야구는 올해까지 16명의 홈런왕을 배출했다. 이중 두 번 이상 타이틀을 수상한 선수는 모두 7명이었고, 최다인 이승엽(5회)을 비롯하여 이만수, 장종훈, 김성한(이상 3회), 김성래, 김봉연, 박경완(2회)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독특하게도 선수 생활 내내 단 한 번도 홈런 타이틀을 차지해본 적이 없는 양준혁(350개)이 꾸준함을 바탕으로 장종훈(341개)을 제치고 통산 홈런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 돋보인다.

프로 원년인 1982년 초대 홈런왕 김봉연(해태, 22개)을 시작으로 1988년 김성한(해태)이 처음으로 단일시즌 30홈런을 도달했고, 4년 뒤인 92년에는 장종훈(한화, 41개)이 사상 최초로 40홈런 고지를 돌파했다. 그로부터 불과 7년 뒤인 99년 이승엽이 총 54개의 홈런을 날려 마의 50홈런 고지를 넘어섰고, 4년 뒤에는 심정수와 치열한 홈런 레이스를 펼친 끝에 총 56개의 홈런으로 오 사다하루(55개)마저 넘어선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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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의 이승엽 VS 타이론 우즈, 2003년의 이승엽 VS 심정수의 불꽃 튀는 홈런 신기록 경쟁은 수많은 팬들의 화제를 모았다. 이들의 홈런 레이스를 보기 위하여 수많은 구름관중들이 운집하는가하면, 대기록 홈런볼을 잡기 위하여 야구장에 잠자리채가 대거 등장하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졌었다.

하지만 2003년을 정점으로 이후부터 한국야구에 홈런 열풍은 한동안 주춤했다. 무엇보다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난 후, 장종훈-이승엽 같은 걸출한 스타들의 계보를 이을만한 차세대 대형 거포가 등장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 활약한 9년 동안 통산 324홈런을 기록한 이승엽은 한국 야구 역대 홈런 신기록 경신을 눈앞에 두고 2004년 일본무대로 진출했고, 심정수(통산 328홈런)는 이미 은퇴했다. 2004년 이후 한국야구에서 박경완-서튼-이대호-김태균-김상현 등이 홈런왕 계보를 이었지만 누구도 타이틀 2연패에 성공하지 못했고, 2년 연속 30홈런 이상을 기록한 선수도 없었다.

2003년 이승엽이 56홈런 고지를 밟은 것을 끝으로 역대 홈런왕들의 기록은 꾸준히 하향세를 보였다. 사실상 현행 국내 프로야구 체제에서 이승엽의 단일시즌 기록은 앞으로도 당분간 깨지기 힘든 최대치를 넘어섰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듬해 박경완이 20여개가 줄어든 34개의 홈런으로 타이틀을 수상한 이래 6년째 한국야구에서 단일시즌 40홈런 이상을 기록한 타자는 나오지 않았다.

이승엽, 타이론 우즈, 심정수 같은 선수들이 전성기를 보냈던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은 사실 역대 한국야구사를 통틀어서 가장 타고투저 흐름이 강했던 시기로도 분류된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거포들의 은퇴와 해외진출, 투수 구질의 다양화 등이 겹쳐 다시 투고타저 현상으로 돌아섰고, 이런 흐름은 최근 1~2년 전까지 계속됐다.

올해 프로야구는 10년 만에 돌아온 타고투저의 시대로 분류된다. 올 시즌 총 169개의 홈런을 때려 팀홈런 1위에 오른 SK를 비롯해, 8개 구단 전부가 10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했는데, 이것은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기록이다. 타자친화적인 일부 지방구장에서는 한 경기에서 5~6개의 홈런이 터져 나오는 일도 빈번했다. 타자들의 방망이가 정교해지면서 힘과 기술을 갖춘 반면, 투수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 두 자릿수 이상의 홈런을 기록한 타자는 무려 48명. 22명에 그쳤던 지난 2008년이나, 24명이 나온 2007년에 비교해도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20홈런 이상도 18명이 배출되며 2008년(4명)이나 2007년(7명)에 비하여 압도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하지만 전반적인 ‘상향평준화’에 비하면 상위권의 기록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올 시즌 30홈런 이상을 기록한 타자는 김상현(36개)과 최희섭(33개), 단 2명에 불과했다. 2008년에도 김태균(31개)과 가르시아(30개), 2명의 30홈런 타자가 등장한 것을 비교할 때 수치는 다소 낫지만 큰 차이는 없다.

역대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거포들의 특징은 ‘꾸준함’이다. 홈런왕의 대명사 이승엽이 97년부터 7시즌 연속 30홈런 고지를 달성했고, 장종훈은 30홈런 이상을 넘긴 시즌은 2회밖에 없지만 대신 15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88~2002)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홈런왕 타이틀이 한 차례도 없는 양준혁 역시 데뷔 첫해인 93년부터 2007년까지 마찬가지로 15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달성한바있다.

현대야구에서 이승엽의 7년 연속 30홈런이나 단일시즌 50홈런 고지는 당분간 나오기 힘든 대기록이라는 게 중론이다. 꾸준한 자기관리도 중요하지만, 리그의 성향이나 수준, 투수들의 견제 등 여러 가지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야구사에 제2의 이승엽이나 장종훈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일단 양준혁의 통산 350홈런 기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고졸선수가 매년 20홈런을 친다고 해도 양준혁의 홈런 기록에 도달하려면 17시즌 이상을 꾸준히 활약해야한다.

현역 선수 중 300홈런 고지를 넘어선 선수는 양준혁과 이승엽, 단 2명뿐. 역대 5위인 박경완(299홈런)과 박재홍(286개), 송지만(283개) 등이 다음시즌 300홈런 고지를 돌파할 수 있는 후보로 꼽히지만, 모두 30대 중반을 넘긴 노장들이라 양준혁의 기록을 따라잡기에는 힘겨워 보인다. 이승엽은 국내복귀를 장담하기 어렵지만, 일본무대에서 남긴 기록까지 포함하면 이미 통산 400홈런을 훌쩍 넘어섰다.(463개)

현역 선수들 중 20대 선수들만으로 범위를 좁혀보면 홈런 1위는 김태균(188개)이다. 김태균은 홈런왕 타이틀은 2008년 한 차례밖에 없지만, 9시즌 간 평균 20개의 홈런을 날릴 만큼 기복 없이 꾸준한 페이스를 보였다. 하지만 올 시즌 이승엽의 뒤를 이어 지바 롯데로 진출하는 바람에 국내 기록도전은 어려워졌다. 그 뒤를 잇는 이범호(160개)도 역시 일본무대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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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시즌 40홈런 이상 기록은 어떨까. 일단 국내 무대에서 활약 중인 젊은 토종 거포에서는 이대호(154개)가 가장 눈에 띄지만 아직까지 30홈런 고지에는 한 번도 도달해보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올 시즌 홈런 1위를 차지한 김상현은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것이 올해가 처음일 만큼 기대 이상의 깜작 활약이었고, 2위인 최희섭은 이제야 예전의 기대치를 회복했다.

이들이 내년 시즌에도 올해만큼의 활약을 보여줄지는 미지수지만, 올 시즌 각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신체조건과 파워, 연령대 면에서 모두 야구선수로 전성기를 맞이할 시점에 이르렀다. 따라서 부상만 아니라면 이대호와 함께 충분히 40홈런 이상도 노려볼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선수들로 평가된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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