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 이준목] 김상현은 의심할 나위없는 2009년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신데렐라’다. 사실 그 누가 예상했을까. 2001년 프로데뷔 후 8년간 1군 출전 경기는 총 398경기밖에 되지 않았고, 그나마도 교체멤버이거나 아예 2군에서 보냈던 시간이 더 많았다. 2009년 LG 유니폼을 입고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기 전까지만 해도 김상현은 소속 팀 내에서도 입지가 불안정한 전력 외 선수였고, 그를 주목하는 이들도 거의 없었다.

2009년 4월 19일은 김상현이 투수 강철민과의 트레이드를 통하여 LG를 떠나 무려 7년 만에 친정팀 KIA 유니폼을 다시 입던 날이자, 그해 프로야구의 역사가 바뀌는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당시만 해도 거물급 스타들의 이동이 아니었기에, 그다지 비중 있게 다뤄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선택이 훗날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트레이드’가 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 대기만성에서 신데렐라로

당시 3루가 공석이었던 KIA는 김상현이 광주에 내려오고 첫 경기였던 21일부터 곧바로 그를 주전 3루수로 선발출전 시켰다. 친정팀에 복귀한 김상현은 야금야금 안타를 쳐내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4월25일 대구 삼성전에서 시즌 첫 만루 홈런을 때려내며 그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때를 계기로 김상현은 최희섭의 뒤를 받치는 팀의 주전 5번 타자로 낙점 받으며 본격적인 성공가도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잠시 반짝하다 말겠지’하고 시큰둥하던 팬들의 반응은 어느새 서서히 경탄으로 바뀌어갔다. 페이스가 절정에 달했던 8월에는 24경기에서 15홈런 38타점을 기록하며 대선배 이승엽과 장종훈이 세웠던 월간 최다 홈런과 타점 기록을 경신했다. 김상현의 불방망이가 폭발하던 시기와 맞물려 KIA는 후반기 일약 리그 선두로 치고 올라왔고, 김상현은 어느새 리그 MVP 후보로 위상이 급상승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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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이 끝났을 때 김상현이 받아든 최종성적표는 36홈런 127타점, 타율 3할1푼5리였다. 홈런과 타점 그리고 장타율까지 3개 부문에서 1위를 석권했고, 이것은 모두 자신의 역대 최고 성적이기도 했다. 최희섭과 함께 나란히 기록한 3할-30홈런-100타점은 2004년의 브룸바(당시 현대) 이후 무려 5년만의 대기록이었고, 그들이 함께 구축한 환상의 ‘CK포’는 타이거즈를 12년만의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으로 이끌었다.

김상현은 올해 MVP와 골든글러브 등 연말 시상식을 휩쓸며, 2009년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았다.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인생역전의 신화가 완성되는 순간되었다. 불과 1~2년 전만해도 2군 선수들과 함께 음지에서 묵묵히 방망이를 돌리던 무명 선수가 어느새 프로야구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내일의 스타를 꿈꾸는 무명 선수들에게 김상현은 곧 희망이고, 신화였다.

▲ ‘새옹지마’ 돌고 도는 인생사

사실 1년 전만 해도 김상현은 그저 그런 ‘생계형 선수’로 머물다가 사라질 운명이었다. 야구계를 잠시 떠돌다 끝내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져야했던 숱한 원석들처럼, 김상현도 가능성은 있지만 부족한 세기로 인하여 주목받지 못했던 숱한 만년 유망주중 하나에 불과했다.

김상현은 군산상고 3학년이던 99년 2차 6순위로 해태의 지명을 받았다. 당시 IMF 재정난에 허덕이던 타이거즈가 ‘해태’라는 이름으로 뽑은 거의 최후의 신인이었다. 정작 신인선수들에 줄 연봉을 지급하기에도 빠듯한 시절이었던 해태는 궁여지책으로 김상현에게 대학 진학을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찍부터 해태 유니폼을 동경했던 김상현은 건국대 진학을 포기하고 계약금 2,000만원에 연봉 1,800만원의 박봉을 감수하면서도 타이거즈에 입단하는 길을 선택했다.

우여곡절 끝에 입단한 프로는 그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지 않았다. 입단 후 2년간 2군에서 묵묵히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김상현에게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간간이 부상 선수가 발생할 때에나 교체멤버로 투입되었고, 그것도 한 경기에 한 타석을 들어서기도 간당간당할 정도였다. 결국 2002년 7월31일 김상현은 결국 LG 방동민과 맞트레이드 되어 서울로 팀을 옮겨야했다. 당시 김상현은 출전기회가 늘어난다는 것보다 친정팀을 떠나는 것에 아쉬움을 토로했을 만큼 타이거즈에 대한 애착이 강한 선수였다.

우완 거포에 목말라있던 김성근 당시 LG 감독은 일찍부터 김상현의 재능을 눈여겨봤던 지도자 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김상현의 시대’는 아직 도래할 때가 아니었었다. 파워는 뛰어나지만 정교함과 선구안이 떨어졌고, 특히 수비에서 고질적인 약점을 드러낸 김상현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타격에서 상승세를 타며 주목받을만한 시점마다 크고 작은 부상으로 상승세가 꺾였다는 점도 팀 내 입지를 불안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결국 김상현은 2004년 말 결국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상무에 입단했다. 비록 1군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안정된 출전기회가 보장된 상무에서 특유의 파워를 과시하며 2군 홈런왕에 오르는 등 그의 방망이는 해가 갈수록 정교해졌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수비였다. 2007년 제대 후 LG로 돌아왔을 때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김재박 감독은 김상현에게 꾸준히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김상현은 또 다시 수비력에서 낙제점을 받으며 결국 주전경쟁에서 밀려났다.

김상현의 야구인생에서 정성훈이라는 그림자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정성훈과 김상현은 같은 호남지역 연고에 우투우타의 1980년생 3루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둘은 모든 면에서 비교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닮은꼴 유망주였다. 정성훈은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99년 해태에 먼저 입단하자마자 주전 자리를 꿰찼고, 1년 뒤 입단한 김상현은 자연히 정성훈의 그늘에 가리기만 하다가 LG로 트레이드되어야했다. 그로부터 7년 뒤 이번엔 정성훈이 FA로 LG에 이적해오며 김상현과의 악연을 이어갔다. 절치부심하며 LG의 주전 3루수 자리를 노리던 김상현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그 정성훈 때문에 김상현은 타이거즈로 돌아올 수 있었고, 그것은 그의 인생의 반전드라마를 그리는 계기가 되었다. 김상현에게 정성훈이란 언제나 앞을 가로막을 것만 같았던 어두운 그림자와도 같았지만, 결과적으로 친정팀으로 귀환하여 야구인생의 못다 핀 꽃을 피울 수 있는 전화위복이 되었으니 이래서 인생사는 새옹지마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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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현, MVP 후유증 딛고 반짝 스타 되지 않으려면

7년 만에 돌아온 친정팀에서 김상현은 그야말로 환골탈태했다. 특유의 파워는 여전했고 여기에 예전에 부족하던 정교함마저 갖췄다. 과거에는 변화구 대처능력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이제는 유인구가 들어와도 쉽게 현혹되지 않았고, 나쁜 볼에도 끝까지 배팅 포인트를 유지한 상황에서 자기 스윙을 했기 때문에 장타가 많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사실 기술적으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김상현의 파워나 타격 폼은 이미 상무와 LG 시절을 거치며 완성단계에 도달해 있었다는 뜻이다. 오히려 올 시즌 김상현의 ‘각성’은 심리적인 부분에서 찾는 분석이 많다. 그동안 김상현의 장점보다 단점만을 지적하던 지도자들에 비하여 조범현 감독은 꾸준히 김상현을 믿고 중용하며 오히려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간 타석에 나설 때마다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심리적 중압감에 시달리던 김상현이 KIA에서는 여유를 가지고 자신만의 타격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3루수와 거포 부재에 시달리던 KIA로서는 올 시즌 김상현을 제외하고 특별한 대안이 없었다는 것도 꾸준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던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김상현은 2010시즌에도 과연 올해만큼의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은 ‘MVP 후유증’을 우려한다. 김상현의 올 시즌 활약은 단일시즌으로만 치면 역대 최고 타자들에 비견될만한 ‘크레이지 모드’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미 MVP에 우승까지 차지하며 평생의 야구인생보다 더 많은 것을 올 한해 다 이루어낸 김상현이 과연 내년 시즌에도 올해만큼의 집중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를 우려하는 시각도 분명 존재한다.

KIA의 한 관계자는 “사실 내년에도 올해만큼의 성적을 기대하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올 시즌 활약으로 김상현은 이제 모든 상대팀 투수들의 경계 1순위가 되었다. 웬만한 정상급 타자들도 2~3년 연속으로 최정상급 활약을 펼치기는 쉽지 않다. 치열한 분석과 견제는 예사가 될 것이고, 올해 높은 성적에 따른 팬들의 기대치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압박감을 극복해야만 김상현이 장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타격에 비하여 수비에서의 문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김상현의 올 시즌 실책은 무려 21개로 8개 구단의 모든 야수들 가운데 가장 많은 수치였다. 3루수가 핫코너로 불린다고 해도 유격수나 2루수보다는 수비 부담이 덜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MVP는 몰라도 골든글러브라는 이름에는 다소 민망한 성적이라는 평가가 없지 않았던 이유다. 올 시즌에는 압도적인 타격능력으로 수비에서의 문제점을 만회했지만, 내년 시즌 진정한 리그 정상급 3루수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완해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김상현의 성공 스토리가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그가 타고난 천재이거나 화려한 이력을 지닌 선수가 아니라 '눈물 젖은 빵'의 의미를 아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김상현이 진정 음지의 2군과 무명 선수들에게 빛과 희망을 안겨주는 상징이 되기 위해서는 올 한해의 ‘반짝 성공’으로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2~3년 뒤에도 꾸준한 모습으로 올해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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