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가 리 대신 할러데이를 선택한 이유는?
[야구타임스 | 김홍석] 당초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대형 트레이드가 벌어졌다. 4개 팀이 관계된 복잡한 트레이드지만, 그 주요 골자만 보자면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클리프 리(31)를 시애틀로 보내고 토론토로부터 로이 할러데이(32)를 받아온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현 리그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두 명의 에이스가 자리를 옮긴 셈이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당초 최대어로 꼽혔던 투수는 FA 시장에 나온 LA 에인절스 출신의 존 랙키였다. 하지만 토론토 측에서 할러데이를 트레이드할 수도 있다는 말이 흘러나온 순간, 소위 ‘강팀’이라 불리는 모든 팀들의 눈은 할러데이를 향했다. 할러데이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메츠와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 돈 좀 있고 능력도 갖춘 팀은 모두 할러데이의 영입작전에 돌입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가장 낮아보였던 팀 중의 하나인 필리스가, 그것도 에이스인 클리프 리를 포기하고 할러데이를 받아올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쉽게 예상치 못했다. 일각에서는 이 트레이드가 과연 필리스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이냐는 회의론도 제기되고 있을 정도다.
다른 팀들은 모두 현재의 에이스급 투수들을 유지한 채 그 로테이션에 할러데이를 추가하길 원했다. 그러기 위해선 유망주들을 대거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 많은 팀들이 군침을 흘렸지만, 쉽사리 할러데이의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이유다. 하지만 필리스는 달랐다. 그들은 올해 자신들을 월드시리즈로 이끈 에이스를 내어주고는 ‘현존 최고의 우완 에이스’인 할러데이를 영입했다. 지금부터 그 실리를 한 번 따져보자.

▶ 로이 할러데이 vs 클리프 리
오래 전부터 쓸만한 선발 투수로 인정받아왔던 클리프 리는 클리블랜드 시절인 지난해에 각성하여 22승 3패 평균자책 2.54라는 뛰어난 성적으로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올해는 시즌 중에 필라델피아로 팀을 옮겼지만, 합계 14승 13패 평균자책 3.22의 꽤나 훌륭한 성적을 남겼다.
무엇보다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5경기에 등판하여 4승 무패 평균자책 1.56의 환상적인 피칭으로 팀을 월드시리즈 준우승으로 이끌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지난 2년 동안 리가 보여준 퍼포먼스로 인해, 요한 산타나와 C.C. 싸바시아가 다투던 ‘현존 최고의 좌완 에이스’의 경쟁구도는 3파전으로 변했다.
리가 사이영상을 수상했던 지난해 할러데이는 20승 11패 평균자책 2.78의 성적으로 투표에서 2위에 올랐다. 올해도 여전히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2.79)하며 17승 10패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지난 2002년부터 메이저리그가 주목하는 우완 에이스로 거듭난 할러데이는 지난 8년 동안 3.13의 평균자책으로 130승을 거뒀으며, 이는 같은 기간 동안 메이저리그 최다승 기록(2위는 123승의 로이 오스왈트)이다.
2위인 사바시아(29회)보다 훨씬 많은 46번의 완투를 기록했으며, 13번의 완봉승도 당연 1위. 무엇보다 238번의 선발 등판에서 1708이닝을 소화한 할러데이는 경기당 평균 투구이닝이 7이닝(7.18)이 넘는 유일한 투수다. 단일 시즌으로 이러한 기록을 달성한 투수도 그 수가 극히 드물건만, 할러데이는 그것을 매년 밥 먹듯이 하며 8년간의 종합 성적으로 그러한 기록을 유지하고 있는 진정한 ‘완투형 선발투수’다. 지난해와 올해도 각각 9번씩의 완투 경기가 있었다.
이렇듯 할러데이는 그렉 매덕스의 뒤를 이어 ‘피칭이란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선수다. 지금 당장 가장 위력적인 피칭을 선보이는 투수는 팀 린스컴이나 잭 그라인키일지 모르지만, 할러데이는 2000년대를 아우르는 가장 뛰어난 투수로 인정받고 있다. 팬들 중에서도 ‘현역 최고의 투수’라 하면 할러데이를 첫 손가락에 꼽는 사람이 부지기수일 정도.
클리프 리가 지난 2년 동안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경력 면에서 할러데이에 훨씬 미치지 못하며, 커리어 하이였던 지난 2년간의 성적에서도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 두 투수의 무게감만 놓고 본다면, 클리프 리를 포기하고 할러데이를 영입한 필리스의 선택은 옳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양키스에 강한 우완투수
할러데이는 우완이고 리는 좌완이다. 별 것 아닌 이유로 보일지 모르지만, 필리스라는 팀에서 이 점은 꽤나 중요하다. 작년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견인한 기존의 젊은 에이스 콜 하멜스를 비롯해 올 시즌 두각을 나타낸 J.A. 햅과 노장 제이미 모이어 등은 모두 좌완이다. 리가 그대로 팀에 남았다면 팀 내 우완 선발은 조 블랜튼 밖에 없게 된다.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좌완이 많아서 크게 손해 볼 것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는 것도 곤란하다.
모이어의 상태가 좋지 않아 5선발 자리는 미정이지만, 일단 내년도 로테이션은 하멜스-블랜튼-햅의 2~4선발 자리가 확정된 상태. 여기에 1선발로 리가 아닌 할러데이가 들어오면 우-좌-우-좌의 균형 잡힌 로테이션이 완성된다.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할러데이는 또 하나의 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는 현 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두 팀이 존재하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살아남은 선수다. 이것이 많은 전문가들이 그를 현존 최고 투수로 인정하는 이유다. 또한 할러데이는 ‘뉴욕 양키스가 가장 두려워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할러데이가 현존 최강의 ‘양키스 킬러’이기 때문이다.
같은 지구 소속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매년 수차례씩 상대한 양키스 전에서 할러데이는 통산 18승 6패 평균자책 2.84를 기록하고 있다. 2000년대의 양키스의 타선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돌이켜 본다면, 이는 믿기 어려운 놀라운 성적이 아닐 수 없다. 양키스라는 팀을 35번이나 상대하면서도 경기당 평균 7이닝을 소화하고, 사이영상을 받아도 될 만한 성적을 거두는 투수는 할러데이가 유일하다. 올해 월드시리즈에서 양키스에 패한 필리스의 필요에 딱 어울리는 선수가 아닐 수 없다.
리도 각성한 작년부터는 양키스를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 왔다. 올해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양키스를 상대로 9이닝 1실점(비자책)의 완벽한 투구로 승리를 따낸 바 있으며, 5차전에서는 7이닝 5실점으로 비교적 투구 내용이 나빴지만 어쨌든 승리를 따냈다. 각성한 작년부터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을 합하면, 5번의 선발 등판에서 35이닝 동안 9자책(2.34), 4승 1패로 매우 훌륭하다.
하지만 리처럼 갑자기 잘하게 된 투수의 경우는 그 전성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쉽사리 예측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다년간의 보증수표인 할러데이와는 종합적인 면에서 차이가 난다. 포스트시즌 경험이 없다는 점은 아쉽지만, 할러데이 정도의 경력을 지닌 선수에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리도 포스트시즌에서의 등판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 딜이 이루어진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는 모양이다.
▶ 결국 문제는 돈
리와 할러데이는 둘다 똑같이 내년을 끝으로 계약이 끝난다. 토론토는 일찌감치 할러데이를 잡을 여력이 없음을 인정하고 그를 팔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필라델피아는 내심 리와의 연장 계약을 원했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좋은 활약을 펼친 리가 그것을 이유로 지난해의 C.C. 사바시아 급(7년간 1억6100만불)의 계약을 원했다는 후문이다. 커리어를 놓고 봤을 때 리와 별 차이가 없는 존 랙키가 보스턴과 5년간 8500만 달러에 계약한 것을 감안한다면, 리의 요구는 다소 무리한 감이 없잖아 있다. 최근의 기세로 ‘플러스 알파’를 준다해도 사바시아와 비교하긴 무리다.
할러데이는 이번 딜에 앞서 필리스 측과 2011년부터 시작되는 3년간 6000만 달러의 연장계약에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내년 연봉이 1575만 달러지만, 그 중 600만 달러는 토론토가 지급한다. 결국 필리스는 앞으로 4년간 할러데이 정도의 투수를 연평균 1743만 달러에 쓸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이 딜이 이루어진 진짜 목적인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필리스는 이번에 할러데이를 얻는 과정에서 팀 내 유망주 2~4위를 모두 희생시켰다. 물론 리를 보내는 대가로 또 다른 수준급 유망주들을 받아왔지만, 지난 7월에 리를 얻는 과정에서 포기했던 유망주들까지 합치면 그 출혈이 만만치 않다.
결국 필리스는 유망주들의 대거 희생을 바탕으로 로이 할러데이라는 특급 투수를 비교적 헐값에 잡아두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우승’을 위한 행보이며, 그것은 앞으로 4년 내에 현실화 되어야만 한다.
필리스는 현재 ‘내셔널리그의 양키스’라고 불릴만큼 탄탄한 전력을 갖추고 있다. 할러데이까지 가세한 이 팀은 내년에도 강력한 우승후보다. 할러데이 역시 메이저리그의 변방에 가까운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벗어나 대도시이며 우승전력인 필라델피아로 가게 된 것에 불만이 있을리 없다. 최고의 격전지구를 벗어난 그가 내년에 어떤 피칭을 보여줄 것인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서로의 필요를 위해 뭉친 이들의 2010년을 기대해 보자.
물론, 이번 다각 트레이드에서 가장 이득을 본 것은 클리프 리를 얻은 시애틀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펠릭스 에르난데스와 리의 원투펀치라면 당장 내년 시즌의 대권에도 도전해볼 수 있을 전망이다.
// 야구타임스 김홍석(블로그 : MLBspecial.net)
[사진=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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