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 이준목]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아마추어 대회에 참가했던 첫 대회로 기억된다.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15승 투수로 자리 잡았던 ‘코리안특급’ 박찬호를 비롯하여 김병현, 서재응, 이병규, 김동주, 진갑용 등 훗날 한국야구사에 기록될 ‘드림팀 1기’로 선발된 선수들은 압도적인 전력으로 금메달을 목에 거는데 성공했다.

당시 박찬호의 병역문제는 뜨거운 감자 중 하나였다. LA다저스에서의 맹활약으로 서서히 메이저리그 풀타임 선발투수로 자리잡아가며 장기계약을 앞두고 있던 박찬호에게 최대의 걸림돌이 바로 군문제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박찬호가 메이저리거로서 보여준 국위선양과 경제적 효과 등을 감안하여 그에게 병역혜택을 주어야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다행히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박찬호가 자연스럽게 병역면제를 받으면서 논란은 가라앉았고, 그 뒤는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FA 대박계약을 이끌어내며 코리안드림을 일궈냈다. 그런데 만일 우승하지 못했거나 프로 선수들의 대회 참여가 보장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박찬호는 현재 미국 영주권을 신청하지 않아 시즌마다 비자를 받아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다. 만일 군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 박찬호는 과연 전성기에 메이저리그 도전을 포기하고 군대에 갔을까? 아니면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따는 제 2의 선택을 했을까. 만일 그랬다면 국내 여론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굳이 유승준이나 백차승의 사례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얼마나 논란이 되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아마 박찬호 본인도 당시로 시간을 되돌린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운동선수에게 병역문제는 언제나 핫 이슈다. 특히 몸이 재산인 프로 선수들에게 있어서 전성기를 보내야할 시점에서 당면하게 되는 2년여의 공백은, 당장의 수입은 물론이고 선수 생명에 있어서도 커다란 위험부담일수밖에 없다. 국제대회가 열릴 때마다 프로 선수들의 대표팀 참여와 병역문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민감한 화두로 급부상했다.

선수들이 합법적으로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길밖에 없다.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이후 야구계에서는 ‘올림픽 동메달 이상-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기준으로 대표 선수들에게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만으로 2년여의 병역 의무를 대신하며 본업인 야구에 충실할 수 있게 하는 특례를 마련했다. 그것도 국가대표로 선택받는 몇몇 특급선수들에게만 해당하는 기회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끝으로 야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퇴출되면서 그나마 야구선수들이 병역혜택을 노릴 수 있는 기회는 더욱 줄어들었다. 지난 2006년 WBC에서 한국이 4강 신화를 일궈냈을 당시 호의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 임시 특례가 추진되기는 했지만, 이듬해 곧바로 특별법이 폐지됐다. 2009년 2회 대회 때는 준우승을 하고도 타종목과의 형평성과 위화감을 거론하는 반대 여론에 밀려 병역혜택은 끝내 불발됐다.

따라서 내년 11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은 현재로선 당분간 야구선수가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승선할 병역미필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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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에 박찬호가 그러했듯이,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의 최대 ‘핫 이슈’는 단연 추신수다. 82년생인 추신수는 내년이면 만 28세가 된다. 지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도 대표팀 발탁이 거론되었으나 당시 사령탑이었던 김재박 감독은 추신수를 외면했다. 결과적으로 당시 대표팀은 대만에 이어 사회인 야구단으로 구성된 일본에게도 패하며 그해 동메달에 그쳤다.

현재로서 추신수가 내년 시즌 대표팀에 발탁될 확률은 100%에 가깝다. 올해 KIA를 우승으로 이끈 조범현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로 잠정적인 합의를 마친 가운데, 부상이나 극심한 부진 같은 변수가 아니라면 추신수는 당연히 대표팀의 선발 1순위다.

대표선발에서 당연히 젊은 선수들 중 병역미필자들이 우선순위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최강의 전력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2006년처럼 좋은 멤버를 보유하고도 우승하지 못한다면 결국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활약 중인 추신수는 다른 국내파 선수들에 비하여 병역면제에 대한 의미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만일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하여 병역면제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추신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한창 전성기를 달려야할 시점에서 입대를 하게 된다면 사실상 메이저리거로서의 선수생활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추신수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취득하는 것이다. 현재 추신수는 미국에서 매년 취업비자를 갱신해가면서 뛰고 있는 상태. 추신수의 병역문제를 잘 알고 있는 클리블랜드 구단도 추신수에게 영주권 취득을 권유하고 있다.

여기서 영주권은 시민권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영주권은 미국에서 거주할 수 있는 권리일 뿐이고 한국 국적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추신수가 영주권을 받으면 군복무를 면제 받는 것이 아니라 연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말하자면 메이저리그 생활을 위하여 편의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클리블랜드 구단이 지원한다면 추신수가 영주권을 발급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영주권 취득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이다. 유승준과 백차승이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서 엄청난 비난을 받은 사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은 지금도 한국사회의 일각으로부터는 매국노 취급을 받고 있다.

추신수가 발급받는 것이 당장 시민권이 아닌 영주권을 취득한다고 할지라도, 많은 이들은 그 영주권을 ‘시민권으로 가는 전 단계’로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로 추신수가 당장은 그럴 의지가 없다 하더라도, 한번 영주권을 취득하는 것이라면 시민권에 대한 유혹 또한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현재로서 추신수에 대한 세간의 여론은 굉장히 호의적이다. 모 인터넷 사이트에서 시행된 여론조사에서는 추신수의 영주권 취득에 대한 찬반 투표에서 90% 이상이 찬성을 표하기도 했다. 국제무대에서 그만큼 국위선양을 해냈고, 대표팀에서도 공헌한 추신수가 다른 또래 선수들과 달리 병역면제 혜택을 받지 못한 불운을 안타까워하는 반응이다. 하지만 정작 추신수가 그러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사회의 전반적인 여론이 온전히 추신수를 옹호하는 분위기로 흐를지는 아직 미지수다.

추신수의 입장에서는 개인의 인생의 달린 문제이지만, 병역문제는 우리 사회에 있어 그만큼 민감한 이슈이기도 하다. 과연 내년 이맘때에도 추신수가 여전히 국민들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코리안 메이저리거’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이것은 박찬호, 추신수의 뒤를 이어 해외무대의 문을 노크하는 모든 유망주들이 한 번 씩은 거쳐야할 통과의례인지도 모른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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