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 이창섭] 2008년 시애틀 매리너스는 최악의 시즌을 보내며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성적 부진으로 단장과 감독이 중도에 해임되었고, 선수단 분위기도 엉망이었다. 결국 시애틀은 선수단 연봉 1억 달러를 넘기고도 정규시즌 100패를 당한 사상 첫 번째 팀(61승 101패)이 되었다.

게다가 내셔널리그의 워싱턴이 메이저리그 전체 최하위를 차지하면서 2009년의 신인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도 빼앗겼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2008년을 보며 시애틀 팬들은 절망했다. 입을 모아 “이게 다 빌 바바시(전임 단장) 때문이다”라는 말을 외쳤고, 그가 남긴 유산으로 인해 미래조차 불투명해 보였다.

악몽의 시간이 끝나고, 시애틀은 새로운 단장을 물색했다.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여러 인물들을 물망에 올려놓고 고민했다. 제리 디포토, 토니 라카바 등 언급이 된 가운데 시애틀이 선택한 카드는 잭 쥬렌식이었다.

▶ 시애틀로 온 최고의 스카우팅 디렉터

당시 밀워키에서 단장 특별보좌역을 맡고 있었던 쥬렌식은 남다른 스카우팅 능력을 자랑하는 인물이었다. 선수들의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이 탁월했고, 그 능력은 드래프트 무대에서 십분 발휘되고 있었다. 즉, 현역 최고의 스카우팅 디렉터가 시애틀 창단 후 8번째 단장으로 취임한 셈이다.

쥬렌식은 1999년 밀워키에 몸 담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약체로 지내온 팀, 그것도 스몰 마켓인 팀에서 고속 성장을 기대하는 건 욕심이었다. 쥬렌식이 맡은 역할도 장기간을 바탕으로 팀을 키우는 것이었기에, 당장 밀워키가 달라진 건 없었다. 유망주 전문 사이트인 <베이스볼 아메리카(BA)>에서 주관한 팜 시스템 평가에서도 밀워키는 2000년부터 2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밀워키에게 서광이 비춰진 때는 2005년, 이전까지 12년 연속 루징시즌(승률 5할 미만)을 이어오던 밀워키는 마침내 5할 승률(81승 81패)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쥬렌식의 아이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닥에서 출발했던 밀워키의 팜은 2007년에는 30개 구단 중 가장 좋은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지금은 밀워키의 양대 기둥으로 성장한 프린스 필더와 라이언 브론을 비롯해 리키 윅스, JJ 하디, 요바니 가야르도, 코리 하트 등이 바로 ‘쥬렌식의 아이들’이다. BA는 그러한 쥬렌식의 공로를 인정해 최초로 단장이 아닌 보직에서 ‘올해의 단장’을 선정했다. 매년 약체로 평가되었던 밀워키는 ‘쉽게 얕볼 수 없는 팀’으로 변모했고, 그 배경에는 쥬렌식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 서서히 막이 오른 쥬렌식의 개혁

이러한 쥬렌식의 발자취는 시애틀 팬들의 기대심리를 발동하기에 충분했다. 그가 단장으로 취임한 후 가장 먼저 시행한 일은 코칭스태프의 대대적인 개편이었다. 감독직에 동양계 감독인 돈 와카마츠를 선임했는데, 이것 역시 전례에는 없던 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일을 시작으로 쥬렌식은 지난 오프시즌 내내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쥬렌식의 첫 FA영입은 러셀 브래년이었다. 파워 넘치는 외야수인 브래년을 연봉 140만 달러에 영입하며 타선의 파괴력 증강을 꽤했다.

트레이드를 통해서도 선수를 영입했다. 그는 뉴욕 메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더불어 삼각 트레이드를 단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팀의 마무리였던 J.J. 푸츠를 내보냈다. 일부 팬들의 반발도 존재했다. 2008년의 부진으로 그를 놓기에는 2007년 활약이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쥬렌식은 과감하게 푸츠와 이별을 고했고,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할 켄 그리피 주니어를 복귀시켰다. 팬들이 선호하는 선수 중 한 명인 그리피의 드라마 같은 복귀는 강력한 티켓파워도 노려볼 수 있었다.

그 결과 올 시즌 시애틀(85승 77패)은 비록 포스트시즌 진출엔 실패했지만 지난 해와 비교해 24승을 더하는데 성공했다. 독주체제를 보인 에인절스와 새롭게 도약한 텍사스에 가려진 감이 있으나, 충분히 의미 있는 2009년을 보냈다.

그 과정에는 쥬렌식의 노림수가 맞아 떨어져 있었다. 그의 첫 작품인 브래년(31홈런)은 팀 내 가장 많은 홈런을 날리며 타선의 힘을 더했다. 그리피를 영입한 것도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경기력을 떠나 그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팀 분위기가 안정되었다. 그리피는 클럽하우스의 리더였고, 2008년까지 어수선했던 선수단 분위기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FA영입 성공보다 더 큰 기쁨을 맛볼 수 있는 트레이드의 승자도 쥬렌식이었다. 트레이드 당시에도 쥬렌식이 단순히 푸츠를 보냈다기 보다는, 그의 내구성과 관련한 문제를 발견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존재했었다. 실제로 푸츠가 부상으로 일찍 시즌을 접은 반면, 그 대가로 받아온 외야수 프랭클린 구티에레스는 착실하게 성장했다. 리그 최정상급의 중견수 수비력을 보여준 구티에레즈의 포지션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었고, 깔끔한 수비는 눈을 정화시켰다.

▶ 시애틀의 2010년은?

이번 오프시즌에 쥬렌식이 공식적으로 보여준 첫 움직임은 잭 윌슨과의 연장 계약이었다. 골드글러브급 유격수인 윌슨을 붙잡으며 수비가 중요한 포지션을 공고히 다졌다. 이어서 FA 시장에 나온 거물급 선수 가운데 한 명인 숀 피긴스와 4년간 36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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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긴스는 다재다능한 선수로 많은 팀들에게 관심을 받았던 선수였고, 쥬렌식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에 시애틀은 비교적 빠르게 피긴스를 영입할 수 있었다. 피긴스의 합류로 시애틀은 상대투수를 곤혹에 빠뜨릴 수 있는 테이블 세터진의 형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같은 지구에 속한 에인절스의 주축 선수를 데리고 왔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정도는 이후에 보여줄 퍼포먼스에 비하면 단순한 서막에 불과했다. 이번 오프시즌에 있어서 로이 할러데이의 움직임이 최대 화두인 것은 명백했다. 그러나 할러데이의 동향은 시애틀과 전혀 상관없는 문제였다. 필라델피아와 에인절스의 2파전으로 굳어진 가운데 할러데이를 얻는 행운의 주인공은 필라델피아가 되었다.

놀라운 점은 이 과정에서 시애틀이 개입해 또 다른 특급 에이스인 클리프 리를 얻어냈다는 사실이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삼각 트레이드가 이루어진 것이다. 시애틀은 필립 오몽, 후안 라미레스, 타이슨 질리스를 내주고 리를 받아왔다. 절정에 도달한 쥬렌식의 선수 영입 능력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세 명의 유망주로 좌완 에이스를 영입하는 것은 ‘천재 단장’이라고 불렸던 팻 길릭도 하기 힘든 일이다. 이로써, 시애틀은 대관식을 마친 펠릭스 ‘킹’ 에르난데스와 함께 리그에서 가장 막강한 원투펀치를 구성하는데 성공했다.

쥬렌식은 잉여자원으로 전락한 카를로스 실바의 처리도 잊지 않았다. 실바로 겨냥한 상대는 컵스였다. 짐 헨드리는 외야수 밀튼 브래들리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터라 쥬렌식과 손을 잡는 다소 위험한 모험을 선택했다. 쥬렌식은 앞으로 2년간 2500만 달러를 받게 되어 있는 실바를 컵스로 보내고 2년간 2100만 달러의 계약이 남아 있는 브래들리를 받아왔다. 실바를 보내는 대가로 900만 달러의 연봉 보조를 해주기로 했지만, 이 트레이드의 승자는 시애틀이라는 것이 전문가와 팬들의 평가다.

시애틀은 중심타선에 포진할 수 있는 선수를 받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브래들리의 태도는 컵스 시절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브래들리는 그리피와 같은 팀에서 활동하게 된 것을 행복하게 여기고 있다고 한다. 또한, 전문가들은 와카마츠 감독과 타이 밴 버클레오 코치를 다시 만난 것이 그에게 좋은 쪽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브래들리가 시애틀에서 2008년의 활약(.321/.436/.563)을 재현한다면 누군가는 뒷목을 잡고 쓰러질지도 모른다.

물론,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팀으로 거듭나려면 여기서 그쳐선 안 된다. 하지만 시애틀의 내년은 적어도 올해보다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쥬렌식의 ‘현재’가 빌 바바시 체제에 있던 ‘과거’보다 월등히 낫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쥬렌식이 밀워키에서 보여준 마술은 팀을 26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시애틀에서 쥬렌식이 보여주는 마술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이미 ‘2년차 단장’ 쥬렌식을 향한 팬들의 박수갈채는 시작되었다.

// 야구타임스 이창섭(블로그 : blog.naver.com/pbbless)
[사진= 시애틀 매리너스 홈페이지 캡쳐]

야구타임스 김홍석 편집인(블로그 : MLBspec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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