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목 칼럼
2009/12/31 09:41
[2009년 결산] WBC를 통해 엇갈린 '명'과 '암'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국야구가 WBC에서 보여준 ‘위대한 도전’은 수많은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기며 야구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김인식 감독을 비롯하여 김태균, 이범호, 정현욱 등 WBC가 배출한 스타들이 국제적으로 이름을 드높였고, 한 대회에서만 무려 5번이나 맞붙었던 일본과의 라이벌전은 대회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WBC는 한국야구계에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기기도 했다. 비시즌 동안 WBC 출전을 위하여 예년보다 일찍 페이스를 끌어올려야했던 국가대표 선수들은 막상 프로야구 시즌이 개막되자 체력적인 부담을 드러내면서 연이은 부상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야구 역사상 이렇게 많은 주전급 선수들의 부상이 동시다발로 쏟아진 것도 전례가 드문 일이었는데, 역시 WBC 효과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는 부분이다.
‘WBC 효과’로 인하여 가장 극명하게 천당과 지옥을 넘나든 인물이 바로 김인식 감독(한화)이다. 김인식 감독은 상위팀 감독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아무도 맡지 않으려 하는 바람에 ‘독이 든 성배’로 전락한 대표팀 감독직을 고심 끝에 수락하며 지난 대회 4강에 이어 이번에는 준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일궈냈다.

하지만 영광도 잠시, 대표팀에 전념하느라 미처 소속팀을 돌볼 시간이 부족했던 김인식 감독은 공교롭게도 계약 마지막 해이던 올 시즌 한화가 23년 만에 꼴찌로 추락하면서 쓸쓸하게 지휘봉을 내려놓아야했다. 세대교체 실패와 주전들의 노쇠화, 그리고 줄부상 등 그간 누적된 문제들이 한꺼번에 곪아터져 나온 결과였지만, 한편으론 김인식 감독이 좀 더 소속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 것도 사실이다. 김인식 감독은 한화 고문으로 물러나며 그토록 염원하는 통산 1000승 고지를 코앞에 두고 야인으로 물러나야했다.(현재 통산 980승-역대 3위)
WBC의 또 다른 피해자는 임창용(야쿠르트)이다. WBC에서 한국대표팀의 주전 마무리투수로 활약했던 임창용은, 대회 도중 팔꿈치 부상의 악재 속에서도 연이은 호투로 한국의 결승진출에 큰 수훈을 세웠으나, 정작 결승전 연장 10회에 이치로에게 허용한 통한의 적시타로 분루를 삼켜야했다. 대회가 끝난 이후에는 벤치의 사구 지시를 고의로 무시했다는 의혹에 휩싸이며 한동안 비난 여론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임창용은 WBC의 아픔을 딛고 일본 리그에서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부활하며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WBC의 저주는 프로야구 시즌 개막과 함께 국내 야구계를 강타했다. 이용규, 김태균, 고영민, 이범호, 이종욱, 김광현, 윤석민, 오승환, 강민호 등이 돌아가면서 줄줄이 부상으로 쓰러졌다. 전체 부상자 중에는 유독 지난 WBC에 참가했던 국가대표 선수들의 비중이 높았고, 그것도 선수생명을 위협할 만큼 위험천만한 부상들이 속출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용규는 펜스 플레이를 하다 오른 발목 복숭아뼈가 골절되는 부상상을 입고 발목에 철심을 박는 대수술을 받아야했다. 김태균은 홈 쇄도 중 블로킹을 시도하는 포수와 충돌하여 뇌진탕을 일으켰고, 김광현은 타구에 맞아 손가락이 골절됐다. 이종욱은 수비 도중 동료 야수와 충돌하여 턱뼈가 골절되고, 목에 스파이크가 찍히는 바람에 꽤나 많은 피를 쏟아내기도 했다. 하나같이 보통 상황에서는 쉽게 구경하기도 힘든 큰 부상들이었다는 점에서 호사가들이 ‘WBC의 저주’라고 수군댄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한 해 동안 이렇게 많은 간판 스타선수들이 큰 부상으로 줄줄이 전열에서 이탈하는 사례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공교롭게도 부상 전까지 좋은 활약을 펼치던 선수들은 부상 직후 이렇다 할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하향세를 그리기 일쑤였다. 비록 경기 중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플레이로 인한 부상이 많았지만, 지난 WBC 출전으로 인한 체력적 부담과도 무관하다고는 말하기 어려웠던 현실이었다.
그나마 WBC 멤버 중 큰 후유증 없이 마지막까지 생존한 선수로는 김현수가 첫 손에 꼽힌다. 시즌 중반 체력적 부담을 토로하며 잠시 고전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큰 위기 없이 꾸준한 모습을 보이며 133게임 전 경기에 출전했다. 자신이 철인임을 과시함과 더불어, 최다안타왕까지 차지하며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즌 초에는 워낙 타격감이 좋아 4할 타율에 대한 기대감을 안길 정도였다.
WBC가 인생역전의 ‘대박’을 터뜨리는 전환점이 된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김태균과 이범호다. 나란히 WBC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이 두 선수는, 결과적으로는 대표팀에서의 선전을 통하여 국제무대에 자신을 어필하는데 성공했다. 시즌 종료와 더불어 FA 자격을 획득한 두 선수는 동시에 꿈에 그리던 해외진출에 성공했으니, 곧 WBC 최대의 수혜자이자 위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들은 이번 WBC 전까지만 해도 태극마크와는 인연이 많지 않던 선수들이었다. 각각의 포지션에 이승엽, 김동주라는 걸출한 아성들이 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쩌다 대표팀에 발탁되어도 백업멤버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승엽-김동주가 모두 태극마크를 고사하고 공석이 된 상황에서 대표팀의 간판 멤버로 맹활약하며 한국의 WBC 준우승을 선두에서 견인했다. 특히 라이벌 일본을 상대로 보여준 맹활약은 추후 일본 구단들의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으며 대박 계약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다.
김태균-이범호의 일본진출과 관련하여 이번 WBC에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인물은 바로 김동주다. 누구보다 해외진출에 적극적이었던 김동주는 FA 자격을 앞둔 2006년 1회 WBC에 출전했다가 불의의 어깨부상을 얻으며 대회는 물론이고 한 시즌을 온전히 날려야했다. 대표팀에서 얻은 부상이었음에도 그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김동주는 지난 2년간 일본진출에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여러 가지 조건이 맞지 않아 결국은 무산되고 말았다.
반면 국내무대에서 김동주보다 나은 성적을 올렸다고 하기 어려운 이범호는 2회 WBC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일본무대에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맞이했다. 만일 김동주가 대표팀을 고사하지 않고 이번 대회에도 출전했더라면 이범호가 과연 주전으로 출장할 수 있었을까. 아이러니한 운명의 장난이 아닐 수 없다는 점에서, 김동주는 WBC가 배출해낸 숨은 희생양인지도 모른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지바 롯데 마린스]
야구타임스 김홍석 편집인(블로그 : MLBspec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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