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 이준목] 지난 2009시즌은 투수들에게는 수난 시대였다. 10년 만에 돌아온 타고투저 열풍에, 전례 없는 부상폭풍까지 겹치며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던 ‘에이스’들도 저마다 고전을 면치 못했다.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면 투수부문의 각종 기록이 역대 최악의 흉년을 기록한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2009년 프로야구 투수부문 타이틀은 삼진왕을 차지한 류현진(한화)를 제외하면 새로운 얼굴들 투성이다. 다승왕은 14승으로 로페즈(KIA)와 윤성환(삼성), 조정훈(롯데) 등이 공동수상을 차지했다. 역대 프로야구 다승왕 기록 중 최소승이었다. 구원왕 역시 이용찬(두산)과 애킨스(롯데)가 26세이브로 공동 1위를 차지하며, 2001년 진필중(23세이브)이후 8년 만에 30세이브를 넘지 못하는 구원왕이 등장했다.

고만고만하게 잘하는 선수들은 많았지만 특출한 선수들을 찾기가 유독 어려웠던 한해였다. 지난 시즌 개막 전까지 유력한 타이틀 후보로 거론되었던 각 팀의 강력한 에이스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 그 많던 에이스는 다 어디로 갔을까?

첫 번째 이유는 역시 부상이다. 프로야구를를 대표하는 정상급 투수들은 지난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참가로 예년보다 빨리 페이스를 끌어올려야했고, 그에 따른 체력적 부담이 매우 컸다. 여기에 지난 한 해는 경기 중 돌발상황으로 인한 뜻하지 않은 부상에 시달리는 경우도 유독 많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김광현(SK)이다. 김광현은 전반기까지만 해도 12승, 평균자책점 2.80으로 두 부문 1위를 달렸으나, 8월 경기도중 두산 김현수의 타구에 손가락이 골절되는 불운을 겪으며 그대로 시즌을 마감해야만 했다. 단 21경기만을 뛰었음에도 다승 1위와 격차가 단 2승밖에 되지 않으며 2점대 자책점을 기록한 선발투수가 김광현 한 명뿐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유난히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오승환(삼성)도 지난해 부상으로 아쉽게 밀려나며 4년 만에 구원왕 타이틀을 다른 선수에게 내줘야했다. 2009년 오승환은 19세이브에 그쳤고, 평균자책점도 4.83으로 데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오승환의 유력한 경쟁자로 꼽혔던 한기주는 전반기에만 최다인 8개의 블론세이브를 범하는 수모를 겪는 등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수난을 이어갔으며, 끝내 팔꿈치 수술로 시즌을 마감, 올 시즌에도 등판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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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손민한(롯데)은 어깨부상으로 고전하는 가운데서도 6승을 올리며 시즌 중반 롯데의 상승세에 힘을 보탰으나 전체적인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올 시즌 부활을 노리는 손민한은 현재 선수협 회장으로 민감한 노조 문제에도 중심에 서 있기 때문에, 그것이 차후 그의 야구인생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지난해 윤석민(KIA)은 국가대표 투수 가운데 WBC 출전에 따른 후유증을 가장 먼저 드러내며 고전했다. 여기에 마무리 한기주의 부진으로 인하여 시즌 초반 한 동안은 마무리 보직을 맡아야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구톰슨과 로페즈의 맹활약으로 그의 빈자리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개인 기록 측면에서는 손해를 많이 봤다. 시즌 후반 에이스의 구위를 되찾으며 어느 정도 명예회복을 하기는 했으나, 10승 고지 달성에는 실패했고, 막판 평균자책 타이틀 경쟁에서도 아깝게 밀려났다.

잘 던지고도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울어야만 했던 투수들도 있었다. 타자는 본인만 잘하면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지만, 투수는 아무리 잘 던져도 타선의 지원이 없이는 승수를 챙길 수 없다. 봉중근(LG)과 류현진(한화)이 대표적이다. 지난 시즌 봉중근과 류현진은 각각 19회와 18회의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기록하며 나란히 1,2에 올랐으나 승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LG와 한화의 타선이 두 투수를 도와주지 못한 탓이다.

반면 급격한 몰락을 겪은 선수들도 있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국내 최고의 우완 정통파 투수로 명성을 떨쳤던 배영수(삼성)는 지난 2007년 팔꿈치 수술 이후 가장 참혹했던 한 시즌을 보냈다. 23경기에서 1승 12패, 평균자책 7.26의 처참한 성적은 05~06년 삼성의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끈 에이스의 기록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치였다. 장원삼(삼성)도 현금 트레이드 파동과 WBC 출전 여파로 최악의 부진(4승 8패 5.54)을 겪었고, 끝내 삼성으로 트레이드 된 올해 명예회복을 노린다.

‘유리몸’ 박명환(LG)은 ‘FA 먹튀’라는 오명을 받으며 작년에도 허송세월을 보내야했다. 2007년 LG 유니폼을 입고 10승(6패)을 거둔 뒤 2년 동안 부상에 눌려 팀에 기여하지 못했다. 아쉬운 2년을 보낸 박명환은 올 시즌 부활을 노린다. 유리몸의 불명예를 벗고 내년 시즌 봉중근과 함께 LG 마운드를 이끌어야하는 중책을 안고 있다.

▲ 에이스의 세대교체, 새로운 ‘어깨’들의 각성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했다. 기존의 정상급 투수들이 고전했던 자리에는 새로운 뉴 에이스들이 각성하며 빈자리를 메웠다. 송은범(SK)은 후반기의 뒷심부족이 아쉬웠지만 지난해 김광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에이스로 성장하며 12승 3패 평균자책 3.13의 빼어난 성적을 기록하며 SK의 막강 원투펀치를 구축했다.

조정훈(롯데)은 풀타임 선발 첫해인 2009년에 14승 9패 평균자책 4.05를 기록하며 공동 다승왕에 올랐고, 175개의 삼진(2위)을 잡아내며 류현진과 치열한 삼진왕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9년 만에 롯데의 포스트시즌 첫 승리투수가 된 주인공도 조정훈이었다.

양현종(KIA)은 타선지원이 다소 아쉬웠지만 12승 5패 평균자책 3.15의 호성적으로 호랑이 마운드의 필승 좌완으로 입지를 굳혔다. 공동 다승왕인 윤성환(삼성)도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달성하며 배영수로부터 에이스의 자리를 물려받았고, 최근 두산으로 이적한 이현승(두산)도 13승 10패 평균자책 4.18을 기록하며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구원 투수 중에서는 유동훈(KIA)의 비상이 단연 돋보였다. 유동훈은 지난해 6승 2패 10홀드 22세이브 평균자책 0.53의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며 가장 괄목할만한 활약을 보여준 마무리투수로 평가받았다. 임태훈(두산), 권혁과 정현욱(이상 삼성), 전병두와 고효준(이상 SK) 등도 중간과 마무리를 넘나들며 전천후 계투 역할로 빛난 불펜 에이스들로 꼽힌다.

▶ 2010년, 에이스들이 돌아온다!

부상선수들이 돌아오는 2010시즌, 마운드는 새로운 에이스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강세를 보였던 외국인 투수들도 로페즈, 글로버, 크루세타, 나이트 등 검증된 기존 투수들은 대부분 재계약에 성공한데 이어, 호세 카페얀과 훌리오 데폴라, 애드리안 번사이드 등 새로운 선수들이 가세하며 외인 투수 영입 경쟁이 어느 때보다 불꽃을 튀겼다. 제2의 로페즈를 꿈꾸는 외인과 토종 투수들 간의 에이스 경쟁이 무척이나 뜨거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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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펜딩 챔피언인 KIA는 에이스를 따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한 자원들이 넘쳐난다. 구톰슨과의 재계약에는 일단 실패했지만, 로페즈-윤석민-양현종의 1~3선발이 건재하고, 새로운 외국인 투수를 영입하고 지난해 부진했던 서재응까지 부활한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투수진을 구축하게 된다. 한기주의 2010시즌 복귀가 불투명하지만 유동훈이라는 확실한 마무리 대안이 있고, 약점으로 꼽히는 불펜에도 제대한 신용운이 가세하며 기존의 곽정철-손영민과 함게 허리를 두텁게 할 전망이다.

SK도 김광현과 송은범이 무사히 재활을 마치고 돌아오면, 재계약에 성공한 글로버-카도쿠라와 함께 선발진이 완성된다. 삼성도 작년에 쏠쏠한 활약을 해준 크루세타-나이트가 재계약에 성공하며 기존의 윤성환, 히어로즈로부터 영입한 장원삼과 함께 마운드를 지킨다. 두 팀의 과제는 선발보다는 불펜에 있다. SK는 채병용이 입대하고 정대현이 전반기 출장이 불투명하지만 이승호, 전병두, 고효준 등이 건재하고, 삼성은 오승환과 안지만의 부활이 관건이다.

LG와 한화는 각각 봉중근과 류현진이라는 확실한 에이스가 있으나 2선발 이후가 문제다. LG는 박명환의 부활과 함께 새로 영입한 일본인 투수 오카모토 신야의 활약에 기대를 걸고 있으며, 한화는 이미 데폴라와 카페얀이라는 두 명의 투수를 영입하여 선발진을 구성했다.

롯데는 작년에 부쩍 성장한 조정훈을 비롯해 장원준과 송승준 등의 젊은 투수들이 건재하지만 에이스는 역시 손민한이다. 그가 완벽하게 되살아나준다면 새로 영입한 라이언 사도스키와 더불어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확실한 5선발 로테이션을 꾸릴 수 있을 전망이다. 문제는 애킨스를 떠나보내며 공석이 된 마무리 보직인데 현재 임경완, 이정훈 등이 후보로 꼽히고 있다.

두산과 히어로즈는 아직 투수진 운용이 불확실하다. 두산은 일단 외국인 선발투수 2명을 영입하는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김선우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지난해 김선우는 두산 투수 중 최다인 11승을 거두며 분전했으나, 5점대의 평균자책책(5.11)에서 보듯 에이스로서의 무게감은 떨어졌다. 2009년 두산 마운드를 이끌었던 홍상삼-임태훈-이용찬 등 젊은 투수들의 성장세와 다음 시즌 보직도 변수다.

히어로즈는 팀 내 최고 투수인 장원삼과 이현승을 떠나보낸 생황이다. 그 두 명 외에도 잠재력 있는 투수자원은 풍부하지만, 마일영과 김수경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검증된 선수가 없다는 점이 최대 불안요소다. 현재로서는 올 시즌 구상을 전망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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