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완투형 투수'에 대한 로망
[야구타임스 | 이준목] 야구는 흔히 ‘투수놀음’이라고 한다. 좋은 타자는 타석에 열 번 서서 세 번만 잘 쳐도 수준급이라고 하는데 비하여, 좋은 투수는 마음만 먹으면 혼자 힘으로 한 시합을 끝내버릴 수도 있다. 뛰어난 투수가 컨디션마저 좋을 때, 이를 제대로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팀 스포츠인 야구에서 ‘완투’란 한 명의 투수가 경기를 얼마나 완벽하게 장악했는지를 보여주는 영광의 훈장과 같다. 경기의 시작과 끝을 완벽히 혼자서 책임지는 것. 팀의 승리가 확정된 순간 포수와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장면은 아마 지구상 모든 선발투수들의 로망이 아닐까.
여기서 완투보다 한 단계 위인 ‘완봉’을 따내기 위해서는 9이닝동안 최소 27명 이상의 타자를 상대하여 단 1점도 내주지 않고 틀어막아야 한다. 아예 출루나 안타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퍼펙트게임 혹은 노히트노런은 평생 야구만 바라보며 살아온 최정상급 투수라 할지라도 생애에 단 한번 허락될까 말까하는 대기록이다.
기록의 스포츠이며 끊임없이 불가능한 확률에 도전하는 과정이 바로 야구의 매력이다. 그만큼 어렵기에 투수들에게는 더욱 도전해보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기록이 바로 ‘완투’이기도 하다.
▲ 완투형 투수가 사라진다
2009년 프로야구에서 완투는 총 20차례가 나왔고, 이중 완봉은 9번이었다. 완투를 한번 이상 기록한 선수는 모두 10명이었고, 최다 완투를 기록한 것은 4회를 기록한 류현진(한화)과 로페즈(KIA)다. 그 뒤를 이어 송승준, 조정훈, 윤성환, 크루세타. 김광현, 송은범, 김상현 등이 한 번 이상의 완투시합을 달성했다.

최다완봉 1위는 송승준(롯데)으로 3차례의 완투를 모두 완봉승으로 장식했다. 송승준은 6월 28일 한화전부터 7월 10일 히어로즈전까지 무려 3경기 연속 완봉승을 달성했는데, 이것은 1995년의 김상진(현 SK 투수코치) 이후 무려 14년 만에 달성한 역대 최장 연속 완봉승 타이기록이기도 했다.
그 뒤를 이어 류현진과 조정훈(롯데)이 각 2회씩의 완봉승을 기록했다. 완투 1위인 로페즈는 정규시즌에는 완봉승이 없었으나, 10월 22일 SK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2009년 포스트시즌 유일의 완봉승을 거둔바있다. 이밖에 장원준과 크루세타각 각 1회씩 완봉승을 달성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프로야구에서 완투나 완봉은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2006년의 경우 완투가 31경기(완봉 10회) 있었지만 2007년에는 23경기(완봉 9회), 2008년에는 21경기(완봉 8회)로 줄었고 2009시즌에는 20경기까지 감소했다.
1983년 고 장명부(삼미)는 44경기(427.1이닝)에 선발 등판하여 이중 무려 36경기를 홀로 완투했다. 장명부는 이해 30승을 거뒀고 그중 26경기가 완투승이었다. 그해 5월 8일부터 29일까지는 무려 8경기 연속 완투승을 거두기도 했다.
야구게임에서나 가능할법한 이런 진기록은 지금도 단일시즌 최다-최장연속 완투 기록을 비롯하여 다승과 선발등판 횟수에서 깨지지 않는(앞으로 깨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부동의 1위다. 80년대까지만 투수분업의 개념이 희미했고, 한 시즌 완투 경기가 100~200경기가 넘을 정도로 에이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던 시절이었을 감안해도 엽기적인 기록임에 틀림없다.
역대 프로야구 최다 완투 기록은 윤학길 LG 투수 코치가 보유하고 있다. 86년부터 97년까지 12시즌 간 롯데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윤학길은 정확히 100회의 완투를 기록하여 최동원(80회)을 제치고 한국 프로야구 사상 유일무이한 세 자릿수 완투를 달성한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완봉 1위는 설명이 필요 없는 국보급 투수 선동열 현 삼성 감독의 몫이다. 총 68회의 완투를 기록하며 전체 4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선동열은 이중 29차례를 완봉승으로 장식하며 윤학길과 정민철(이상 20회)을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올라있다.
단일 시즌 최다 완봉기록도 86시즌 선동렬 감독과 95시즌 김상진 코치(당시 OB)가 가지고 있는 8회다. 연속 경기 완봉은 지난 시즌의 송승준을 비롯하여, 선동열(86년), 김상진(95년), 하기룡(82년 MBC), 이상군(86년 빙그레)까지 5명이 달성한 3연속이 최고기록이다.
2000년대 이후 현대야구가 선발, 미들맨, 롱릴리프, 셋업, 마무리 등으로 점차 세분화되고 선발투수는 퀼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 이하) 정도만 해도 자기 몫을 다한 것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되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완투나 완봉은 점점 보기 어려운 기록이 되어가고 있다.
디지털의 발달은 선수마다 치밀한 맞춤형 전력분석을 가져왔고, 타자들도 기술적으로 향상을 거듭하면서 이제 구위만으로 상대를 윽박지를 수 있던 시기는 지났다. 에이스 투수가 전날 밤 마신 술에 잔뜩 취한 상태에서 경기에 등판하고도 완봉승을 거뒀다는 전설적인 무용담은 선수들의 수준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던 과거에나 통하는 이야기가 됐다.
타자들의 방망이를 끌어내기 위하여 유인구 구사비율이 늘어나면서 투수들의 전체 투구수도 자연히 늘어나게 됐다. 몇몇 A급 투수들을 제외하면 구속은 빠른데 비하여 제구력을 갖춘 투수가 많지 않다는 점도 완투가 감소한 요인이다.
지난해를 끝으로 송진우(완투 64회, 완봉 11회)와 정민철(완투 60회. 완봉 20회)이 나란히 은퇴하면서 현역 선수 중 가장 많은 완투를 기록한 선수는 김원형(SK, 29완투 7완봉)이다. 그러나 불혹을 바라보는 김원형은 더 이상 선발투수가 아니다.
현재 토종 선수 중에서 완투형 투수로 분류할 수 있는 선수는 단연 류현진이 첫 손에 꼽힌다. 2006년 프로무대에 데뷔한 류현진은 4시즌 동안 총 18회의 완투와 5회의 완봉을 기록했으며 767과 2/3이닝을 소화하며 경기당 6.73이닝을 소화했다. 같은 기간 류현진보다 더 많은 이닝과 완투를 기록한 선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류현진이 완급조절 능력만 더 보완하면 역대 선배들과 어께를 나란히 하는 완투형 투수로 이름을 올릴 수 있다고 평가한다. 류현진은 2009시즌 경기당 평균 투구수가 109.4개로 전체 1위를 기록했으며, 리그에서 3000개 이상의 투구수를 기록한 유일한 투수였다. 데뷔 초기부터 구위에 비하면 투구수가 조금 많은 편이다. 그에 대한 마운드 의존도가 높은 탓도 있지만, 탈삼진을 의식하다보니 투구수가 다소 늘어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야구도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한다. 많은 이들은 이제 ‘완투형 투수’보다는 ‘이닝이터’라는 개념을 중요시한다. 경기 전체를 에이스가 홀로 짊어져야한다는 부담보다는 후속 투수들을 믿고 6~7이닝 이상 던져 실점을 최소화하는 것이 선발투수의 새로운 임무다. 분업화된 현대야구에서 혹사를 부르는 완투보다는 훨씬 합리적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씩은 선동열이나 최동원처럼 등판 자체만으로 상대의 전의를 상실케 하는 ‘외계인급’ 에이스들의 팽팽한 투수전을 보고 싶은 것은 그것이 진정한 야구의 ‘로망’이기 때문이 아닐까.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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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김홍석 편집인(블로그 : MLBspec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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