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까지 'Reds'였던 남자, '캡틴' 배리 라킨
[야구타임스 | 이창섭] 2010년 명예의 전당 투표 결과가 발표되었다. 안드레 도슨은 전미야구기자협회 소속 기자 539명 가운데 420표(77.9%)를 얻어, 염원했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러나 올해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기 위해 넘어야 될 벽은 높았다. 축배의 잔을 들이킨 선수는 도슨이 전부였다.
도슨과 함께 가능성이 컸던 선수로 버트 블라일레븐과 로베르토 알로마가 거론되었는데, 그들은 각각 5표와 8표가 부족해 쿠퍼스타운으로의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될 인물은 첫 해 입성에 실패한 알로마보다 13번째 도전에서 또 한 번 탈락의 고배를 마신 블라일레븐이다.
현역 시절 동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해 불운한 투수로 회자되었던 그는 은퇴 이후에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불운을 벗어내지 못하고 있다. 기록상(통산 287승 250패 3701삼진 3.31)으로는 마땅히 헌액이 되었어야 할 선수가 아직도 후보군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데 올해 처음 명함을 내민 후보 중에서도 블라일레븐과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처럼 예상되는 선수가 있었다.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명예의 전당과 관련된 논의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새로운 모습의 유격수 모델을 개척했던 배리 라킨은 첫 도전에서 5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라킨의 득표율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높았고, 성공적인 출발선을 끊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지금부터 신시네티 레즈의 ‘완벽한 캡틴’이었던 라킨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 ‘빅 레드 머신’을 보면서 자란 아이
신시내티에서 태어난 라킨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운동신경을 자랑했다. 고등학교 시절, 야구를 비롯해 미식축구와 농구에서도 재능을 보이며 두 곳의 대학에서 장학생으로의 입학 제의를 받았다. 메이저리그 구단인 신시내티 레즈도 고졸 유격수인 라킨을 얻기 위해 2라운드에서 지명권을 사용했다. 하지만 라킨은 자신의 능력을 더 높이 평가해준 미시건 대학을 선택했고, 프로 데뷔를 잠시 미루기로 했다.
대학에 진학한 라킨은 신시내티의 관계자들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미시건 대학의 울버린은 라킨이 있는 동안 대학 월드시리즈에 두 번이나 진출했고, 라킨 자신도 리그 MVP를 두 차례 수상했다. 그는 3년 동안 평균 .361의 높은 타율을 기록했으며, LA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눈부신 대학 생활을 보낸 라킨은 1985년 드래프트에 다시 나왔다. 신시내티는 같은 실수를 재차 반복하지 않고, 그에게 1라운드 지명권(전체 4순위)을 행사했다.
신시내티에게 있어서 이 선택은 프랜차이즈 스타와 인연을 시작하게 된 역사적인 선택이었다. ‘빅 레드 머신’을 보면서 ‘제2의 데이브 콘셉시온’을 꿈꾸었던 한 아이 역시 자신의 꿈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콘셉시온은 7~80년대 레즈의 주전 유격수)

▶ 신시내티의 중심에 선 사나이
프로에 입문한 후에도 라킨의 활약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마이너리그에 있으면서 팀을 챔피언쉽 시리즈로 이끌었고, 더블A와 트리플A를 모두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그 결과, 라킨은 드래프트 지명을 받은 다음 시즌부터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커트 스틸웰과 콘셉시온이 번갈아가며 버티고 있었던 유격수 자리는 이듬해부터 ‘라킨만의 것’이 되었다. 주전으로 나선 선수들 중 나이는 가장 어렸지만, 라킨은 공수 양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적응을 마친 3년차부터는 화려한 수상 경력의 신호탄도 쏘아 올렸다.
1990년, 신시내티는 리그 우승을 차지해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상대팀이었던 오클랜드는 데이브 스튜어트, 데니스 에커슬리, 리키 핸더슨, 호세 칸세코, 마크 맥과이어 등 만만치 않은 전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시내티는 오클랜드에게 단 한 경기도 내주지 않는 놀라운 경기력을 과시하며 월드시리즈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냈다. 리드오프로 경기에 임했던 라킨도 제 역할(.353)을 해주면서, 팀이 14년 만에 우승하는데 일조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될 점이 바로 라킨의 리더십이다. 1990년에 신시내티가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끈끈한 팀워크가 바탕 되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출신이었던 마리아노 던컨을 위해 라킨이 스페인어를 배운 사례는 매우 유명하다. 그는 팀을 하나로 융합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했고, 이 결실이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나타난 것이다. 자신보다 팀을 먼저 생각했던 라킨의 행동은 동료들의 귀감이 되었고, 신시내티는 팀을 짊어질 리더를 얻을 수 있었다.
선수로서 발전도 계속되었다. 1991년, 라킨은 생애 처음으로 20-20클럽에 가입했다(20홈런-24도루). 1995년에는 리그 MVP까지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당시 MVP 선정을 두고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단테 비솃과 그렉 매덕스의 성적이 상대적으로 라킨보다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라킨이 비솃보다 많은 표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유격수라는 이점도 있었지만, 그에게 1995시즌이 가지는 특별함도 존재했다. 1995시즌은 라킨이 개인 통산 100홈런, 500타점, 200도루 같은 기념비적인 일들을 이룬 해였고, 이것으로 인해 시즌 내내 주목받을 수 있었다. 신시내티 선수가 MVP를 받은 것은 조지 포스터(1977년) 이후 처음이었으며, 내셔널리그에서 유격수가 MVP에 선정된 것도 33년만의 일이었다.
MVP를 거머쥔 다음 해, 라킨은 30-30클럽에 가입하며 선수 시절의 절정(33홈런 36도루)을 맞이했다. 수비력만 중시했던 유격수 포지션에서 이 기록을 달성했던 선수는 라킨이 처음이었다. 라킨은 전형적인 툴 플레이어였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유격수의 개념을 바꿔놓았다. 1997년에는 공식적으로 팀의 주장을 맡으며 다시 한 번 팀의 재건을 노렸으나,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놓치고 말았다.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수록 라킨의 노쇠화도 서서히 진행되었다. 이미 구단의 대우는 눈에 띄게 달라졌지만 라킨은 끝까지 먼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2004년의 겨울로 다가가는 시점에 그는 구단으로부터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신시내티는 19년 동안 팀을 위해 묵묵히 자리를 지켜 준 프랜차이즈 스타를 과감히 포기한 것이다. 1년만 더 뛰었더라면 라킨은 훨씬 좋은 기록을 가지고 은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미련 없이 선수생활을 마감했으며,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다른 어떤 기록보다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신시내티의 붉은색 유니폼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팀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다른 팀의 선수로서 내 의무를 다해야 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 라킨의 은퇴 회견 中
▶ 명예의 전당을 꿈꾸는 캡틴
라킨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유격수였다. 그는 12번이나 올스타전에 출장했으며, 골드 글러브(3회)와 실버 슬러거(9회)도 수차례 차지한 바 있다. 눈에 띄는 상은 실버 슬러거다. 메이저리그 역사 상 내야수 가운데 라킨보다 이 상을 더 많이 받은 선수는 알렉스 로드리게스(10회)밖에 없다. 전 포지션으로 대상을 확대해도 라킨을 능가하는 선수는 배리 본즈(12회)와 마이크 피아자(10회)가 전부다.
그렇다고 해서 라킨이 공격력만 뛰어났던 유격수는 절대 아니었다. 그는 아지 스미스, 레이 오도네스 같은 선수들과 동시대에 살았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3년 연속 골드 글러브 수상자로 이름을 올린 것은 라킨의 수비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루에서도 라킨은 남다른 감각을 자랑했다. 그는 9시즌이나 2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했고, 51개의 베이스를 훔쳤던 1995년에는 91%의 높은 성공률도 보여주었다. 전설적인 '대도' 리키 핸더슨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던 당시, ESPN은 각 포지션 별로 가장 주루 플레이에 능했던 선수를 선정했었다. 당시 유격수 부문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린 선수가 통산 379도루(83.1%)의 라킨이었다.
라킨은 뛰어난 기량과 함께 훌륭한 인성도 갖추고 있었다. 사회에서도 헌신적인 활동으로 모범을 보인 그는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93년)과 루 게릭 상(94년)도 받았다. 이런 모습들은 많은 사람들이 왜 라킨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세이버 매트릭스의 대부’라 불리는 빌 제임스도 라킨을 가리켜 ‘역사 상 가장 완벽한 10명의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라킨이 명예의 전당으로 가는 길목은 순조롭게 보였다. 하지만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부분이 있다. 선수 시절, 팀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허슬 플레이를 자주 보여주었던 라킨은 목부터 발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를 놓쳤고, 140경기 이상 출장했던 시즌은 7번에 그친다. 부상 경력은 라킨이 걸어온 위대한 야구 인생에서 작지만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라킨이 내구성에서 합격점을 받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결점으로 인해 라킨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전미야구기자협회의 큰 결점으로 남을 것이다. 숫자로 남겨진 기록들은 우리가 라킨을 통해서 느꼈던 기쁨을 완벽하게 측정할 수 없다.
“우리가 야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명예의 전당은 어떤 선수들이 들어가야 되는가?” 미국 현지의 기자들이 이 질문에 대한 현명한 결론을 내릴 때, 신시내티의 영웅은 비로소 올바른 종착역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 야구타임스 이창섭(블로그 : blog.naver.com/pbbless)
[사진= 신시네티 레즈 홈페이지 캡쳐]
☞ 'FA 미아' 장성호 딜레마, 해결책은 없나?
☞ 2010년을 미리보는 '가상' 메이저리그 뉴스
야구타임스 김홍석 편집인(블로그 : MLBspecial.net)
- Copyrights ⓒ 야구타임스(yagootime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