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 이준목] 스토브리그가 돌아올 때마다 한국야구계는 연봉협상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테이블을 두고 마주앉아 선수와 구단 측이 연봉 처우와 각종 옵션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은 이제 친숙해진 풍경이다.

연봉협상이란 단순히 동그라미 하나를 더 받아내기 위한 협상이나 기 싸움의 차원을 떠나, 선수에게는 한 시즌의 노고와 앞으로의 기대치를 온전히 평가받는 시간이며, 구단의 입장에서는 다음 시즌 팀 운영을 향한 전체적으로 퍼즐 조각을 맞추는데 있어서 중요한 첫 걸음이기도 하다.

▶ 한-미-일의 연봉협상 제도

미국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도 마찬가지지만 연봉협상에 있어서 한국야구와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에이전트 제도에 있다. 미국과 일본은 철저히 ‘전문가’인 에이전트를 고용하여 협상을 일임하고 선수는 운동에만 전념하다가 만족할만한 계약조건이 나오면 마지막에 도장만 찍으면 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제도적으로 에이전트의 개입을 철저히 불허하고 있다. 해당 구단과 선수가 직접 대면하여 계약을 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아무래도 운동만 하는 선수에 비해서는 구단 프런트 측이 협상의 주도권을 쥐는 경우가 많다. 물론 2001년 프로야구 선수협의회의 출범 이후 부분적인 제도 개선을 통하여 최근에는 법률 대리인인 변호사를 실질적인 에이전트로 고용하여 협상과정에 동참시키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정서상 협상권한을 온전히 위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스캇 보라스 같은 대형 에이전트들이 스타급 선수들을 장악하며 구단을 좌지우지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의 야구선수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스타플레이어이거나 선수 본인이 ‘협상의 달인’이 아닌 이상, 구단에 비하여 상대적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 것이다.

평소 호형호제하던 선수와 구단 관계자들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계약조건을 교환하는 한국의 연봉협상 테이블에서는, 단지 고과나 팀 성적에 대한 객관적 평가 못지않게 ‘인정’이나 ‘의리’같은 감성적 변수가 크게 작용한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이점은 아무래도 일장일단이 있다.

철저한 비즈니스 논리로 임하는 미국이나 일본은 일견 냉정해보이지만 그만큼 공과 사의 구분이 분명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단순히 보이는 성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변수가 많다. 다른 선수들과의 형평성이나 관계도 고려해야하고 선수의 자존심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다보니 돈 문제를 놓고 아옹다옹하다가 서로 감정이 상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 최희섭-이대호, 스토브리그의 뜨거운 감자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도 연봉협상 테이블에서 생기는 잡음이 벌써 여러 차례 들려오고 있다. 최희섭(KIA)은 구단의 연봉 제시액에 불만을 품고 예정된 개인훈련 일정도 접은 채 한동안 연락을 끊고 산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대호(롯데)는 지난해 팀 내 고과 1위에 100타점의 커리어 하이 활약을 펼치고도 삭감 대상에 오른데 분개하여 팀 훈련과 시무식에 불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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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국내무대로 복귀하는 이병규(LG)도 연봉협상과 옵션 조항을 놓고 구단과 줄다리기가 상당히 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훈(롯데)는 유일하게 연봉조정신청까지 갔고, ‘안타제조기’ 김현수(두산)도 협상과정에서 구단의 처우에 적지 않은 서운함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의 연봉협상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은 구단이나 개인별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협상 기준이 모호하며, 그 또한 매번 오락가락한다는 점이다. 물론 구단별로 팀 내 고과에 다른 연봉 협상 기준은 있다. 하지만 선수들의 네임밸류나 구단의 입장에 따라 ‘해석하기 나름’이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번에 이대호나 최희섭의 사례가 대표적인 경우다.

물론 구단의 입장에서는 고과에 따라 합리적으로 협상하고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선수들의 입장은 또 다르다. 지난해 이대호는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고도 개인 성적의 하락을 이유로 연봉이 동결됐고, 최희섭은 큰 폭의 삭감을 피할 수 없었다. 이들은 지난 시즌 ‘이보다 더 뛰어날 수 없는’ 성적을 거두며 내심 지난 2년간의 보상까지도 기대했지만, 구단은 첫 협상에서부터 기대 이하의 액수를 제시하며 자존심에 상처만을 남겼다.

한 선수는 “예전에 성적이 나쁠 때는 가차 없이 깎다가 막상 성적이 잘 나올 때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개인 성적이 좋을 때는 팀 성적을 핑계로 삼다가, 팀 성적이 좋으면 또 다른 선수와의 형평성을 거론하는 식으로 평가 기준이 오락가락한다는 지적이다.

▶ 연봉협상, 돈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구단 측도 할 말은 있다. 전체적인 선수단 예산을 감안해야하는 구단 입장에서는 형평성을 고려할 때 특정한 선수의 요구만 우선적으로 들어주기가 어렵다. 또한 한두 해 반짝 잘하고 과도한 연봉인상을 요구하는 선수들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스타 선수들끼리는 “적어도 저 선수보다는 더 받고 싶다”는 경쟁의식이 붙어서 협상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구단 측이 주장하는 동결이나 삭감에 대해서도 일부 팬들의 비판처럼 무조건적으로 깎는 데만 혈안이 된 것이 아니라, 선수의 가치나 자존심을 고려하여 합리적인 대우를 해주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는 해명이다.

저마다의 명분이야 어찌됐든, 결국 선수와 구단이 직접 맞대고 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연봉협상 테이블에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신뢰’의 문제다. 단지 연봉 몇 푼을 더 주고 덜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성과 가치에 대한 공감과 신의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계약은 불가능하다.

FA 시장에서 미아가 되며 KIA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한 장성호의 경우, 팀을 떠나기로 결심한 데는 단순히 연봉문제만이 아니라 구단의 박대에 큰 실망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호는 “돈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첫 협상 테이블에 앉을 때부터 구단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연봉협상은 선수의 시즌 성적에 대한 평가이자 앞으로의 기대치에 대한 동기부여라는 측면이 반영되어있기도 하다. 여기서 가장 경계해야할 부분은 단지 돈 몇 푼을 빌미로 하여 서로 ‘빈정’이 상하는 상황에 이르는 것이다. 이대호나 최희섭이 연봉협상 과정에서 받은 ‘상처’는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하는 간판선수들의 입장에서는 동기와 의욕의 상실이라는 후유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성과 감성, 객관성과 주관성, 공과 사의 구분에서 아직 선진화되지 못한 한국의 연봉협상 풍경. 결국 구단이든 선수든 비즈니스 관계일수록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임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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