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 이준목]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또다시 팬들의 여론이나 현장의 목소리에 반하는 악수를 뒀다. KBO는 12일 이사회를 개최하여 지난해 논란이 되었던 ‘무승부=패 규정’을 2010시즌에도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다음시즌에도 프로야구 승률 계산은 승리 경기수를 총경기수로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무승부는 패배나 마찬가지로 취급된다.

많은 이들은 이미 지난 시즌 무승부제도하의 승률계산법이 남긴 부작용이 여러 차례 공론화된 만큼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여론의 동향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 무승부제도를 바라보는 각계의 입장 차이

KBO “현행 제도 유지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현장의 야구인들 “현장 무시한 탁상행정이다. 무승부도 승률에 포함하라”, 야구팬들 “무승부가 웬 말이냐, 끝장승부 도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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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는 현행 무승부제도가 프로구단들의 고의적인 무승부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고, 시행된 지 아직 1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이미 지난해부터 설득력을 잃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무승부를 패배로 규정하는 현행 제도의 약점은, 무승부를 실질적으로 인정하면서도 그 가치와 과정은 부정한다는데 모순점이 있다. 야구는 기본적으로 승패를 가리는데 의미가 있다. 선수들이 하루 종일 열심히 경기를 치렀는데 끝내 승부를 가리지도 못한 것도 아쉬운 판에, 똑같이 ‘패배자’로 취급된다면 양 팀이 보여준 하루 동안의 노력을 모두 부정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무의미한 낭비인 셈이다.

고의적인 무승부의 가능성을 차단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공격과 수비가 확실히 구분되는 야구의 특성상 허점이 많다. 만일 현행제도에서 초 공격인 팀이 마지막 이닝에 점수를 내지 못할 경우, 이미 말수비시에는 비기나 지나 큰 차이가 없게 된다. 결국 마지막 수비에서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경기에 대한 의욕이 감소하는 수밖에 없다. 시즌 후 승률 계산 시에는 패배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승수만 같다면 두 팀의 순위가 똑같아지는 황당한 사례도 일어날 수 있다.

8개 구단 사령탑들은 지난해 무승부=패 규정에 대하여 이미 여러 차례 불만을 표시한바있다. 그중에서도 비판에 가장 적극적인 인물은 단연 김성근 SK 감독이다. 김성근 감독은 지난해 승률 계산법이 처음 개정되었을 때부터 줄곧 비판적인 노선을 견지해왔던 인물이다.

김성근 감독의 SK는 실제로 지난 시즌 이런 무승부 제도의 폐단을 행동으로 보여준 팀이기도 하다. 지난 2009년 6월25일 광주에서 열린 KIA와의 경기에서 연장 12회 초의 마지막 공격이 무위로 끝나며 5-5 동점 상황이 유지되자, 김성근 감독은 12회말 수비에서는 야수인 최정을 마운드에 올리고 야수들의 수비 위치를 극단적인 좌측으로 이동시키는 괴상망측한 수비 시프트를 선보였다.

결국 경기는 KIA의 승리로 끝났고, 정황상 고의 패배 의혹이 제기되었다. 김성근 감독은 당시 팀 사정상 보낼 투수가 없었다고 시치미를 뗐지만, 많은 이들은 사실상 김감독이 KBO의 무승부 규정을 고의로 조롱하기위한 상징적 제스쳐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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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가 무승부 규정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지난해 페넌트레이스 1위 팀 KIA는 81승4무48패(승률 .609)로 2위 SK(80승6무47패 승률 .602)를 단 1승차로 따돌렸다. 하지만 2007년까지 적용되던 기존 방식(무승부=0.5승)으로 승률을 계산했다면 SK가 승률 .630, KIA가 .628로 1위가 바뀌게 된다. 결과적으로 SK가 1위로 한국시리즈가 직행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SK는 KBO가 만든 무승부 제도 개정의 지난해 최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KBO가 이사회 내부의 탁상공론에만 치우쳐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려는 의지 자체가 없었다는 것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높다. 만일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되었다면, 적어도 그에 합당한 명분이나 승률제도의 모순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적 장치를 제시하는 게 먼저다. 많은 감독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무승부를 0.5승으로 계산하여 승률에 반영하는 방법도 완벽하기는 않지만, 그나마 대안이 될 수 있었다.

물론 KBO도 할 말은 있다. 한 관계자는 “끝장승부는 현장에서 하도 힘들다고 말이 많아서 폐지한 것 아닌가. 하지만 야구의 기본은 승부를 가리는 것이다. 무승부를 패배로 규정한 것은 현장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무승부는 인정하되, 되도록이면 승부를 가리는 것을 권장하기 위한 조치”라고 반박했다. 현장의 비판적 목소리에 대하여 항상 제도 탓만 하지 말고, 그 전에 최선의 경기력으로 승부를 가리는 데나 치중하라는 지적이다.

이를 바라보는 야구팬들의 입장은 어떨까. 야구팬들은 기본적으로 야구에서 무승부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하여 상당히 부정적이다.

많은 야구팬들은 끝장승부의 부활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야구는 기본적으로 승패를 가리는 것을 미덕으로 하는 스포츠이고, 무승부를 0.5승으로 취급하든 패배로 취급하든 이미 무승부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모순의 시작이라는 지적이다. 만일 일부 감독들이 주장하는 대로 선수층이 얇고 체력적인 부담 때문에 끝장승부가 힘들다면, 시간제한을 걸어놓고 다음 날 이어서 경기를 하든가, 그것도 안되면 승부치기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볼만하다는 반응도 있다.

어차피 무엇이든 완벽한 제도란 없다. 무승부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든 끝장승부를 도입하든, 무승부를 패배로 계산하던 승률에 반영하건, 무엇이든 찬성과 반대의 의견은 엇갈릴 수밖에 없고 저마다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최선의 대안을 끌어내기 위한 그 과정과 노력에 있다. 지금처럼 KBO와 현장 야구인들, 그리고 팬들의 목소리가 갈려져서 소통을 위한 어떤 노력도 없이 평행선으로만 내달리고 있는 모습이야말로 무승부제도가 존속되는 것보다 더욱 씁쓸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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