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 김홍석] 감독은 ‘벼랑 끝에 선 기분’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는 반면, 선수들은 ‘목표는 우승’이라든지 또는 ‘반드시 우승하고 돌아오겠다’는 인터뷰를 망설임 없이 하고 있다.


김인식 감독은 지난 제1회 WBC의 4강 진출을 견인한 장본인이고, 선수들은 작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의 주역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헌데 이들의 입장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분명히 한국은 작년에 열린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승을 차지한 나라다. 전 세계적으로 야구의 저변이 그리 넓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한국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야구 강국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목표는 되도록 크게 잡을수록 좋은 것이며, 실제로 우승권에 근접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제2회 WBC에 임하는 우리가 ‘디펜딩 챔피언’처럼 행세해서는 곤란하다. 어디까지나 WBC라는 대회에 한해서 우리는 ‘도전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말이 많아지면 언젠가는 문제가 생긴다. 대회 직전에는 ‘야심찬 포부’라며 칭찬받다가도, 결과에 따라 ‘오만’이었다며 비판으로 바뀌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지 않았는가. 이럴 때일수록 필요 이상의 말을 아끼는 자세가 요구된다. 올림픽 때의 김경문 감독과 이번에 지휘봉을 잡은 김인식 감독처럼 말이다.


김경문 감독은 지난해 올림픽 본선 풀리그에서 한국이 7전 전승으로 4강에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금메달’이라는 단어를 섣불리 입에 담지 않았다. 그가 공식 인터뷰를 통해 금메달 획득에 대한 포부를 밝힌 것은 준결승에서 일본을 이기고 나서였다.


올림픽이 끝난 후 강민호는 “일본전 승리 이후 헤이해질 수도 있는 대표팀을 모두 불러 모아 금메달을 향한 목표의식을 뚜렷하게 새겨주신 분이 김경문 감독님이다. 그분의 그러한 리더십을 존경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기자와 카메라 앞에서는 더없이 신중했던 김경문 감독의 리더십은 지난 올림픽에서 유독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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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제1회 WBC에서나 이번 2회 대회에서도 섣불리 낙관적인 예상을 내놓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감독이 너무 부정적이지 않은가’라는 의견도 있으나,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근거도 없이 희망적인 이야기로 팬들의 귀만 즐겁게 하는 것보다는 낫다.


지금 대표팀을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은 올림픽으로 인해 기대치가 꽤나 높아진 상황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약간 들떠있다. 일본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바람에, 당장 1차전의 상대가 대만이라는 것은 잊어버린 듯 보이기도 한다.


<더블 일리미네이션 방식에 따른 아시아 예선>

1경기 : 한국 vs 대만

2경기 : 일본 vs 중국

3경기(패자전) : 1경기 패자 vs 2경기 패자 => 3경기 패자는 탈락 확정

4경기(승자전) : 1경기 승자 vs 2경기 승자 => 4경기 승자는 2라운드 진출 확정

5경기(최종 진출전) : 3경기 승자 vs 4경기 패자 => 5경기 승자는 2라운드 진출 확정

6경기(순위 결정전) : 4경기 승자 vs 5경기 승자 => 6경기 승자가 예선 1위


이번 예선에 도입된 '더블 일리미네이션‘이라는 방식은 간단히 2번 이기기 전에 2번 패하지만 않으면 된다. 즉, 어떤 팀이 되었건 2패를 당하기 전에 2승을 거두면 무조건 본선 2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 아시아 예선에서 일본과 최대한 두 번 만날 수 있다. 두 경기를 모두 패한다 하더라도, 그 두 경기가 승자전과 순위 결정전에서의 패배라면 탈락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대만전은 다르다. 한국이 1차적인 목표인 2라운드 진출을 위해 실질적으로 가장 신경 써야 하는 상대는 바로 대만이다. 일본과 두 번 대결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이나, 대만과 두 번 대결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첫 경기에서 대만을 누르고, 승자전에서 (중국을 이기고 올라올) 일본까지 연파하면서 기분 좋게 2라운드 진출을 확정 짓는 시나리오가 가장 이상적이긴 하다. 하지만 첫 경기에서 패하거나 승자전에서 일본에게 졌을 경우에는 또 다시 대만과의 시합을 준비해야만 한다.


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최고조를 달리고 있던 대한민국 야구 드림팀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예선에서 대만에게 4:5로 패했고, 결국 본선 진출 실패라는 고배를 마신 바 있다. 2006년 WBC에서 4강에 진출하면서 기세를 탔던 대표팀은 그해 말 도하 아시안게임 첫 경기에서 대만에게 2:4로 무릎 꿇으며 대회 3연패의 꿈이 날아갔다. 두 대회 모두 최종 탈락은 일본이 결정지었으나, 애당초 사기를 꺾은 것은 대만이었다.


최근의 국제 대회에서 제1회 WBC 준결승을 제외하면, 오히려 한국 대표팀에게 가장 큰 장해물이 되었던 것은 일본이 아니라 대만이었다. 비록 왕첸밍(뉴욕 양키스)과 궈홍즈(LA 다저스)같은 메이저리거들이 불참하는 바람에 최고의 컨디션은 아니라고 하지만, 방심해서 이길 수 있는 상대도 아니다.


한국 야구는 지난 십여 년 간 다섯 번의 큰 경사가 있었다. 방콕-부산 아시안 게임 2연패,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제1회 WBC 4강, 그리고 작년의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5개 대회에서 가장 공헌도가 높은 선수 다섯 명을 꼽자면, 박찬호, 이승엽, 구대성, 이종범, 김동주 정도를 들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들 다음으로 공헌도가 높은 박진만은 부상으로 인해 대회 출장이 불투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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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이유 있는 불참’이었다고는 하지만 박찬호와 이승엽이 참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도 최강 전력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입장이다. 방심하다가는 일본에게 져서 자존심 상하는 정도가 아니라, 대만에게 패하는 굴욕을 맛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이치로는 2006년 WBC가 시작되기 전, “앞으로 30년 동안 한국과 대만이 일본을 넘보지 못하게 하겠다”는 발언을 했다가 우리나라에게 연거푸 패배하면서 체면을 구긴 적이 있다. 한국의 야구팬들은 그것을 두고 흔히 ‘이치로의 30년 망언’이라고 표현한다. 이치로는 자신감과 포부를 드러낸 것이었지만, 그것이 실제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기에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한국 대표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예선도 치르지 않은 상황에서 ‘우승’이라는 단어는 쉽게 내뱉지 않는 편이 좋다. 아무리 일본에서 신경전을 걸어온다지만, “이치로가 누구냐?”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괜한 빌미를 제공해줄 뿐이다. 실제로 일본전에서 이치로에게 많은 안타를 허용하며 패하기라도 하면 그 뒷감당은 어찌하려고 그러는가.


프로는 경기에서 실력으로 대답해 주면 된다. 3년 전에 일본을 연파하면서 가장 통쾌했던 것은 이치로의 도발을 실력으로 이겨냈기 때문이고, 지난 올림픽에서도 계속해서 ‘위장 오더 사건’을 언급하며 언론 플레이를 하는 호시노 감독의 일본을 보기 좋게 쓰러뜨림으로써 그의 입을 다물게 만들지 않았는가.


대표팀은 이제부터라도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을 잊어버릴 필요가 있다. 올림픽과 WBC는 전혀 다른 대회다. 일본과 미국을 오가는 일정이나, 상대 팀의 수준 등에서 WBC는 올림픽 보다 훨씬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WBC에 두고 온 것이 있다. 당시 우리는 아시아 예선과 본선 2라운드에서 6전 전승을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어처구니없는 대진표 때문에 준결승에서 또 다시 만난 일본에게 결국 패하고 말았다. 전체 성적 5승 3패의 일본이 우승을 차지한 반면, 그 일본을 두 번이나 꺾은 6승 1패의 한국은 3위였다. 그 당시에 느껴야만 했던 억울함과 아쉬움을 이번 대표팀이 대신 풀어주기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전자’의 자세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챔피언의 위치에서 상대를 내려다봐서는 곤란하다. 올림픽의 영광은 잠시 동안 기억 속에서 지우자. 상대의 신경전에 발끈해서 대응하기 보다는, 눈앞에 기다리고 있는 상대(대만)에게 집중해야 한다.


‘좋은 성적’과 ‘세대 교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야구 대표팀. 이번 제2회 WBC에서는 말이 앞서기 보다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승리에 목말라 있는 도전자의 자세로 세계의 강호들을 꺾어 나가는 ‘젊은’ 야구 대표팀을 기대해 본다.


// 김홍석 기자(블로그 : MLBspec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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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Daum 스포츠 해외야구 섹션 전문 칼럼니스트
전 데일리안 스포츠 메이저리그 전문 객원기자
현재 야구타임스 편집기자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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