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 이준목] '국민타자' 이승엽에게 2010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단 올해를 끝으로 요미우리와의 4년 계약이 만료된다. 이승엽이 올 시즌이 끝난 후 일본에 계속 잔류하건, 다시 한국무대로 귀환하던지 간에 올해의 성적에 따라 그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요미우리에서의 생존 여부를 떠나 이승엽은 이후 자신의 야구인생 후반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결정을 내려야할 시기를 맞이했다. 우리 나아로 어느덧 35세. 이제 베테랑이라는 단어를 넘어 ‘노장’이라 불려도 어색하지 않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플레이어라 해도 전성기가 지난 다음에는 급격한 쇠퇴를 맛보며 커리어를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멋지게 내려오는 것이 더욱 힘들다는 교훈은 이승엽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이들은 이승엽이 어쩌면 처음 해외진출을 선언했을 때부터 일본이 아닌 미국으로 진출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아쉬워하기도 하기도 한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팬들에게는 이승엽이 전성기 때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려보지 못했다는 것이 어쩌면 훗날 시간이 흘러서도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지 모른다.

아시아홈런 기록을 세우며 국내 무대를 평정했던 2003년이 미국진출의 적기였지만, 여러 가지 조건상의 문제로 무산되며 결국 이승엽은 일본진출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승엽은 이후에도 메이저리그 진출을 놓고 몇 차례 선택의 기로에 놓였으나, 2006시즌이 끝난 후 요미우리와 4년 계약을 맺었다. 사실상 메이저리그에 대한 미련을 접은 셈이다.

▶ 갈림길에 선 이승엽, 정답은 마음속에 있다.

인생은 때로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이승엽은 최근 메이저리그에 대한 미련을 포기한 것처럼 느껴지는 발언을 몇 차례 했다. 나이도 나이지만, 최근 2년간의 일본무대에서 겪은 극심한 부진이 이승엽에게 얼마나 큰 트라우마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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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도 어느덧 일본무대 7년차다. 빛나는 시절도 있었지만, 사실 성공의 단맛보다는 시련의 쓴맛이 더 길었다. 지바 롯데 시절에는 준비되지 않은 해외진출과 플래툰 시스템을 선호하는 감독과의 궁합이 맞지 않아 고전했고, 요미우리에서는 연이은 부상과 슬럼프로 마음고생을 겪어야했다. 한국무대에서 활약하던 시절에는 큰 부상도 장기간의 슬럼프도 없었던 이승엽이기에, 그가 느낀 부담과 심적 갈등은 더욱 심했다.

한국에서 야구하던 시절의 이승엽과 일본에서의 이승엽은 천지차이다. 부의 크기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것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다. 일본에서 야구하는 이승엽의 모습은 정작 국내시절만큼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승엽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일본무대에서의 성적이나 구단의 처우가 아니라, 주변의 기대에 부응해야한다는 압박감에서 오는 마음의 병이었는지도 모른다.

2009년 연속 무안타행진을 이어가며 극심한 슬럼프를 겪던 시절,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쫓기고 불안해하는 듯한 이승엽의 얼굴은 한없이 피로해보였다. 사실 비교적 잘나갈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향 팀에서 마음이 통하는 친구-동료들과 편하게 운동하던 시절과 '용병'으로서 매일매일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해야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며 야구를 해야 하는 환경의 차이다.

사람에게는 각자 자기에게 맞는 방식이 있다. 김성근 감독처럼 섬세하게 야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김인식 감독처럼 선 굵은 야구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승엽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만의 야구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영웅이던 국민타자가 야구를 '즐기면서 하는 모습'을 본지가 꽤 오래된 느낌이다.

지난 2008시즌이 끝나고 귀국할 당시, 이승엽의 표정은 수척했고, 한 눈에 봐도 독기가 서려있었다. 구단의 처우에 대한 서운함도 살짝 내비치며 "내년에는 잘해서 실력으로 큰소리치겠다"며 이를 갈았다. 대표팀 합류를 고사하고 주변 지인들과의 만남도 외면한 채 일찌감치 훈련량을 늘리면서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올해는 달라졌다. 이승엽은 인터뷰 때마다 “마음을 비웠다”는 말을 유독 자주한다. 설마 장기간의 부진 때문에 근성이나 의지를 잃어버린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명예회복에 대한 이승엽의 집념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표정은 오히려 담담하고 편안해 보인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않고, 야구 자체를 즐기고 싶다."는 것이 이승엽의 바람이다.

이승엽은 다가오는 시즌의 목표를 30홈런 100타점으로 정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록의 수치가 아니라 목표를 향한 마음가짐이다. 이승엽은 그동안 잃어버린 여유에 눈을 뜬 모습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치는 조급함과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평안을 찾은 셈이다. 대표팀에도 재승선 가능성을 시사했고, 팀 내 주전경쟁에서도 일일이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다.

어차피 이승엽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승엽의 야구인생이 올해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아직도 그에겐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 2010시즌이 요미우리에서의 마지막 시즌이라 의식하기보다, 야구인생의 후반전을 맞이하는 새로운 시작임을 생각하고 후회 없는 시즌을 보내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요미우리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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