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 이준목] 어둠이 짙어질수록 아침은 더 가까워진다고 했다. 불과 열흘 사이에 구단 대내외적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LG 트윈스였기에 최근 올 시즌 첫 4연승을 내달리며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극적이다. 무엇이 LG 야구를 달라지게 했을까. ▲ 곪은 상처는 감추는 것이 아니라 도려내야한다.
LG는 최근 열흘 사이에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불어온 '인터넷 대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감독과 팀의 신인 선수, 간판스타와 그의 가족, 구단 프런트와 은퇴 선수까지 연관된 잇단 '폭로전'에 팀 분위기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기 일보직전이었다. 팬들은 '모래알' LG의 진면목이 나타났다며 일제히 비난을 퍼부어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시련들은 오히려 LG 선수단의 해묵은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반성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팀을 둘러싼 악재가 잇달아 터져 나오는 동안, 선수들은 누가 먼저 시키지도 않아도 스스로 변해야한다는 위기의식을 절감했다.
이전만 해도 '팀 보다는 내가 우선'이라는 마인드가 앞섰던 LG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동료가 실수를 해도 얼굴을 찌푸리거나 비난하는 모습을 찾기 힘들다. 상황이 어렵더라도 서로 격려하고 함께 잘해보자며 어깨를 두드린다. 한때 부진으로 잠시 2군으로 강등됐던 봉중근은 15일 삼성과의 복귀전에서 호투한 이후 눈물을 흘리며 공개 사과했고, 부상에서 돌아온 박명환도 성공적인 부활과 함께 후배들을 독려하고 있다.
한 LG 선수는 "외부에서 팀워크가 항상 문제라고 하는데 사실 실제보다 좀 과장된 측면도 있다. 어느 팀이건 크고 작은 갈등이나 파벌은 있기 마련이다. 단지 LG가 팀 성적이 계속 안 좋다 보니 남들과 비슷한 일을 겪어도 더 크게 비약되는 측면이 있다. 올해는 선수들이 위기의식을 겪으며 한번 해보자고 똘똘 뭉쳐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자평했다.
이러한 위기가 시즌 중반이나 후반이 아니라 차라리 일찍 불거진 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동안 알면서도 쉬쉬하던 LG 내부의 문제점이나 팀 분위기가 공론화되면서 오히려 선수들이 스스로 외부 여론과 문제의식을 느끼고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 ▲ 경쟁과 포용, 박종훈의 리더십
LG 개혁의 임무를 띠고 5년 임기의 첫 시즌을 맞이한 박종훈 감독은 초반부터 큰 시련에 봉착해야만 했다. 어떤 개혁이든 처음에는 저항에 따라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박 감독은 감독의 권위만을 앞세워 소통 없는 개혁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감독의 본심이야 어찌됐든 대내외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선수들을 문책하기 않고 포용하기로 한 것은 '정치적으로' 너무나 훌륭한 선택이었다. 그러면서도 팀 쇄신에 대한 끊임없는 의지와 원칙 또한 분명히 했다. 결과적으로 박 감독의 소신은 LG가 초반 부진을 딛고 상승세를 탈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초반 LG호를 이끌고 있는 박종훈 감독의 리더십은 '경쟁과 포용'의 병행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름값에 연연하지 않은 과감한 선수기용으로 각 포지션에 걸쳐 선수들의 주전경쟁을 끊임없이 부추겼으며, 그와는 별개로 신뢰와 배려를 통하여 선수단의 자신감과 팀워크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사실 지난해까지 LG에서 ‘경쟁’과 ‘협동’은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주전들은 이름값만으로 자신들의 지위가 변함없을 것이라 믿었고, 팀보다는 개인의 야구를 앞세우기 일쑤였다.
하지만 박종훈 감독은 올 시즌 오지환이나 박경수, 작은 이병규 같은 선수들을 중용하며 주전 구도에 변화를 줬다. 당초 올스타 라인업으로 평가받았던 LG 타선이 이택근이나 박용택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건재할 수 있는 것은 박종훈 감독이 항상 강조해왔던 '견제 세력'의 성장 때문이다. “주전 고참들의 부진은 비주전이나 젊은 유망주들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팀으로서는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말에서 박종훈 감독의 긍정적인 사고가 잘 드러난다.
박종훈 감독은 이름값에 미치지 못하는 스타 선수에게는 2군행도 가차없을 만큼 단호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몇몇 유망주들에게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신뢰를 보이며 성장을 유도하기도 했다. 유격수 오지환은 ‘실책왕’, 또는 ‘지환터널’이라는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박종훈 감독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으며 꾸준히 중용되고 있고, 최근 경기에는 가파른 타격감을 선보이며 LG의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다.
또한 박종훈 감독은 1군과 2군을 오가는 순환 시스템의 정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봉중근이나 김광삼의 사례에서 보듯, 1군의 주전 선수가 잠시 2군으로 내려가는 것은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나 계속되는 주전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1-2군이 격리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순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 두산의 2군 감독 시절부터 구축된 박종훈 감독의 생각이다. ▲ 남은 것은 구단과 팬들의 인내와 믿음
'이상훈 파문'으로 홍역을 자처한 LG 이영환 단장은 며칠간 팬들의 십자포화로 인해 귀가 간지러웠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내부 단속에 대한 프런트의 대응은 나름 훌륭했다. 특히 봉중근, 이형종 등의 미니홈피 파문이 불거졌을 당시, 예전과 달리 일희일비하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박종훈 감독의 리더십에 힘을 실어준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감독의 권위가 올바르게 서지 못하고, 되려 그 위에 군림하는 스타 선수들과 파벌이 있었다는 것이 바로 그 동안 LG가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던 문제점 중 하나였다. 그러한 점을 감안할 때, LG가 초보 박종훈 감독에게 5년간이나 대권을 맡겼던 이유와 초심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LG가 반짝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장기레이스에서 연승과 연패는 종이 한 장 차이와 같다. 현재의 LG는 결코 완성된 팀이 아니며 변화를 위하여 조금씩 새 판짜기를 시도하고 있는 팀이기 때문이다.
팀이 시련에 봉착할 경우 언제든 또다시 터져 나올 수 있는 악재와 변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구단과 팬들 모두 여론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팀의 개혁을 끈기 있게 지켜볼 수 있는 인내와 믿음이 필요하다. 비가 온 뒤에 땅은 더욱 굳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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