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매니 라미레즈…
[야구타임스 | 김현희]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저자 이문열)>을 보면, 한 반의 반장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엄석대가 그 반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각종 시험에서 1등을 차지하는 모범생으로도 전교에 정평이 나 있었지만, 실상은 이 모두가 ‘만들어진 허상’이었다. 그의 시험 답안지는 각 과목에서 가장 우수한 친구들이 대신하여 작성해 준 것이었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조차 그의 '절대권력'을 묵인할 만큼, 주인공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반이 바뀌고, 새로운 담임선생님이 배정되자 그의 ‘거짓 모습’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에 엄석대는 교실 문을 박차고 나와 그대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고, 이후 그는 범죄자가 되어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사실 소설이라는 것은 대부분 ‘허구’다.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저자가 꾸며 쓴 것이지만, 때로는 이와 비슷한 내용이 현실에서 그대로 실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 13일, 메이저리그에서도 이와 아주 유사한 일이 일어났다. 왕년의 강타자 매니 라미레즈(39)가 가정 문제로 싸움을 벌이다 아내를 구타해 경찰에 의해 체포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때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역대급 강타자’의 이미지가 점점 일그러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까지 하다.
▲ 약물로 저주를 깬 사나이?
사실 라미레즈는 1990~2000년대 메이저리그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선수다. 동시대에 존재했던 모든 타자들 중 타점 생산 능력에서는 단연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1995년 이후 2006년까지 12년 연속 30홈런-100타점을 모두 돌파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2004년에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86년간 지속되어 왔던 ‘밤비노의 저주’를 깨뜨린 1등 공신이기도 했다. 당시의 월드시리즈 MVP는 다름 아닌 라미레즈의 몫이었다. 3년 뒤인 2007년에도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이후 라미레즈는 2008시즌 도중 LA 다저스로 트레이드 되었고, 내셔널리그에서도 강타자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그러나 그의 행보가 여기서 제동이 걸릴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몰랐다.
2009시즌을 앞두고 메이저리그는 때 아닌 ‘약물 파동’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양키스의 알렉스 로드리게즈가 과거에 스테로이드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짐과 동시에, 라미레즈 역시 당시 행해진 약물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라미레즈에게 50경기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특히, ESPN의 저명한 야구 칼럼니스트인 제이슨 스탁(Jayson Stark)은 “라미레즈를 잊어라. 절대 그를 용서할 수 없다(Forget Manny, don't forgive him)”는 제목의 칼럼을 통하여 그를 강도 높게 비난한 바 있다. 팬들로부터 ‘약물로 밤비노의 저주를 깬 것이냐!’는 비아냥이 들려 온 것도 바로 이때부터였다.
출장정지로 인해 많은 경기를 결장했음에도 불구, 라미레즈는 그 해에만 19홈런 63타점을 기록하며 제 몫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듬해에 또 다시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유니폼을 갈아입어야 했으며, 지난 오프시즌 동안에는 템파베이와 새로이 입단 계약을 맺으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젠 라미레즈를 잊어야 할 때
그러나 라미레스는 지난 4월, 약물 검사에서 또 다시 양성 반응이 나오면서 100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 때문에 라미레스는 지난 4월을 기점으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은퇴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이후 국내에서 라미레즈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반년이 흐른 지금, 이번에는 폭행 사건을 일으켜 ‘사회면’에 얼굴을 내민 라미레즈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 사건은 조금이나마 그의 은퇴에 아쉬움을 지니고 있던 일부 팬들의 그리움마저 완전히 씻어버리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쇼는 끝났다(Show's over)”라는 한 칼럼니스트의 이야기처럼, 라미레즈는 우리 앞에 ‘일그러진 영웅’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셈이다.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등장하는 엄석대가 후반부에 경찰에 끌려가는 모습이 그려진 것처럼, 라미레즈 역시 현실 속에서 똑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국에서도 많은 팬들 보유하고 있던 매니 라미레즈였기에 지금 그의 모습은 화가 나면서도 안타깝다.
// 야구타임스 김현희 [사진=50경기 출장 정지 당시의 LA 다저스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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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김홍석 편집인(블로그 : MLBspec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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